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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Jul 12. 2023

지금부터 적금을 들라고?

<실화소설 7> 경제관념이 남다른 김비야


마이애미 H2에겐 천국다.

미국의 여러 도시를 돌아가며 살아봤지만, 휴양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마이애미는 사뭇 달랐다. 겨울에도 반팔을 입을 수 있는 기후도 좋았지만, 주민들의 인정도 남다르게 푸근했다. 마이애미는 멕시코와 미국의 중간쯤 어딘가에 현주소가 찍혀 있는 것만 같았다. 멕시코에서 인간의 정을 듬뿍 받으며 여행을 마친 후라 더욱 끌림이 강했는지도 모른다. 언제 다시 살아볼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 기회가 될 때 잡는 것은 어쩌면 현명한 일이라.


Y는 H2의 심정을 이해하였다. 이는 마치 Y가 제주도를 천국이라 여기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었다. 겨울의 추위가 무서운 Y에겐 따뜻한 남쪽나라가 최고였다. 서울에서 직장을 명퇴하면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할 때, 그녀 앞에 몇몇 도시가 물망에 올랐다가 모두 최남단의 도시 서귀포에 밀려버렸다. 하지만 삼다도인 제주도는 바람이 거셌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서귀포만은 잠잠했다. 용케도 한라산이 커다란 덩치로 북풍을 막아주기 때문이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올레길을 따라 유채와 갯무꽃이 흐드러진 해안을 걸을 때면, 천국인지 낙원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아무튼 이애미에서 WU(웨스턴유니언)을 통해 급전을 전해받은 H2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하였다. 독립심이 강한 성격이라 결코 부모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신처럼 일을 당했을 때, 부모의 그늘 없이 따가운 세상을 헤쳐나가는 것은 너무나 서럽고 고달픈 일이었다. 아무리 무소유로 살고 싶어도 돈 한 푼 없이 산다는 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큰돈은 아니었지만, H2는 금쪽같은 돈을 아끼면서 쓸 줄 알았다. 제일 먼저 은인 디디 위해 식사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오붓한 시간을 가지는 동안 둘 사이의 우정은 한 뼘 더 쑤욱 자라나고 있었다.




 H2는 어려서부터 경제관념이 남달랐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아빠의 친구가 집으로 놀러 와서 나중에 어떤 남자랑 결혼할 거냐고 묻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아빠 같은 사람이라고 답을 해서 다들 웃은 적이 있다. 이유를 물어보니, 헐! 아빠의 직업이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기 때문이란다. 또 한 번은 Y에게 주식을 사는 게 어떠냐고 한 적도 있다. 아이가 할 소리는 아니는데, 주식이 떨어졌기 때문에 지금이 기회인 것 같다는 얘기였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안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Y에게 다가와 대뜸 탄같은 한 마디 던졌다.


"엄마!"

"왜?"

"지금부터 적금을 들어야 하지 않겠어?"

"엥? 엄마가 왜 적금을 들어야 하는데?"

"응, 왜냐하면 나중에 언니랑 나랑 결혼시키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허걱! 자다가 봉창을 두드린다고 했던가.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어 Y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얘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아니면 요즘 아이들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바로 돌아 Y는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하였다. 이 참에 제대로 경제교육을 시키면 누이도 좋고 매부도 은 것이다. 그리하여 H2를 앞에 앉혀 놓고는 한껏 과장된 말투와 포즈로 교육하기 시작했다.

 

"야. 그게 무슨 소리니? 결혼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란다. 부모는 공부만 시켜주는 거고, 결혼은 자기가 벌어서 하는 거야."

"? 어.. 그런 거였어?"

"그러엄! 그렇지! 엄마도 그렇게 한 걸!"

"그럼.. 나 결혼할 때 선물은 해줄 거야?"

"물론이지! 엄마가 아주 좋은 거 해줄게!!"


H2는 안심하고 안방을 떠났다. Y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만하면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교육은 어릴 때 해야 효과가 좋다고 하는 것이다. 순간 훌쩍 커버린 큰 딸 H1 걱정되었다. 터울이 나서 벌써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머리가 굵어져서 씨알이 먹힐지 모르는 일이었다. 더구나 H1의 학비와 용돈은 아빠인 K가 담당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K를 통해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터였다. 그러나 순진 K는 경제관념이 H2보다도 한 수 아래였다. Y는 다소 걱정되었지만, K를 세세하게 코치하여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드디어 D데이가 왔다. 그날은 무슨 인지 K가 H1을 차로 학교까지 데려다주게 된 날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미대 진학을 위해 홍대 앞의 미술학원을 다닐 때도 밤늦은 H1의 귀가는 늘 K의 몫이었다. 허약체질인 Y가 H2를 낳은 이후, 여력이 없는 Y의 애정은 H1을 감싸지 못했다. 보다 못한 K가 H1을 전적으로 돌보겠다고 선언한 이후로 십수 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K와 H1은 그토록 끈끈한 관계였다. 하지만 K는 그날따라 H1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먼저 심호흡부터 하고 다시 큰 맘을 먹은 후에야 포문을 열 수 있었다.


"얘야, 아빠가 할 얘기가 있는데.."

"응?"

"음.. 학자금 말인데.. 네 등록금을 나라에서 융자받고 있잖니?"

"그래서?"

"그거.. 졸업하면 네가 갚으라고.."

"? 나 그럼 학교 안 다닐래!!!!!!!!"


 총알이 튀어나왔다. K는 강력한 한 을 맞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총알 원자폭탄의 위력과 맞먹어서 초토화된 정신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아득했다. K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다독여서 학교에 내려주고는 걸음아  살려라 꽁무니를 뺐다. 솔직이 K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보통의 한국 아빠들처럼 자식의 등록금은 물론이고, 용돈도 넉넉히 주고 싶었다. 단지 마누라의 등쌀에 밀려 자신이 없는 전쟁터로 내몰린 것뿐이다. 이야기 전말을 전해 듣고 Y는 한숨이 나왔지만, H1이 그렇게 세게 나올 줄은 미처 몰랐으니 작전 미스였다.




그래도 어려서 경제 교육을 잘 받은 H2는 Y와 타협할 줄 알았다. 미국에서의 교환학생 과정을 끝내고 잠시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학급에서 반장도 하며 잘 적응하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눈물을 펑펑 흘리며 미국에 다시 가고 싶다고 하소연하였다. Y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사립학교 등록금은 만만한 액수가 아니었다. 더구나 아직 10대인 H2가 지금 미국에 다시 갈 경우, 앞으로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낼 가능성은 전무한 것이다. 아, 이를 어쩔 인가?


그러나 세상에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Y는 H2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학비가 비싼  말고,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학교를 찾으면 될 일이었다. Y는 H2와 집안의 경제상황을 공유하고, 비의 상한선을 정했다. 또 으로 절대 학비 외의 경제적 지원은 더 이상 없다는 전제를 깔았다. 허락이 떨어지자, H2는 밤낮으로 자신이 갈 만한 학교를 서핑했다. 오대호 연안의 한 학교가 포커스에 들어왔다. 홀로 서류를 준비해서 입학 허가를 받아냈다. 2년을 더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다. Y는 허리띠를 졸라매 모든 것을 감내할 생각이었다.

 

H2는 세상에 태어나서 그토록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었다. 경쟁이 심한 한국에서도 슬렁슬렁 다니던 학교였다. 그러나 왠지 미국에선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본인이 하던 곳이기도 했고, 학비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금액이누구보다도 부모의 부담을  알기 때문이다. H2는 죽자 사자 파고들었다. 그러다 한 번은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하였다. 모두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만, 그런 과정을 딛고 1년 만에 AP제도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H2는 학도 주립대학을 선택했다. 사립대학에 비해 학비가 쌌고, 장학금도 일부 받을 수 있었다. Y는 H2가 1년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돈과 시간을 절약하게 되었고,  주립대라서 경제적 부담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추가로 기숙사비와 생활비를 부쳐야 했기에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 Y를 위해 H2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미국의 대학생 대부분은 나라에서 학비 융자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빚의 무게에 짓눌려 학교를 중퇴하는 경우도 있었다. 학비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은혜였다.


멕시코 여행, 테오티우아칸의 아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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