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거리에서 화장실을 찾아 달리기

엄마 저 오줌 마려워요.

by 박수소리
img.png 관광객이 거의 없는 한낮의 브로드웨이 거리(트립어드바이저에서 캡처함)


2시간 만에 벌써 4번째 관광지였다. 밖이 너무 더워서 차 안에 오래 있고 싶었지만, 타슈켄트의 관광포인트가 워낙 몰려있어 목적지와 목적지 사이가 3분~5분 이내였다. 브로드웨이 거리는 우리나라 명동처럼 상점과 식당들이 몰려있었는데, 여름 한낮 땡볕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이 아예 없었다. 주원이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할머니, 저 똥 마려워요."를 연발하며 울상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상점 위주의 거리라 공용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비에커는 급한 대로 화장실을 찾아 빠르게 걸었고, 거리의 가판대에 물어물어 깔끔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화장실 좀 써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정말 아름다운 식당의 아름다운 화장실이었는데, 이곳 역시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화장실 썼는데 여기서 밥 먹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머쓱하게 묻자, 그는 여기서 먹을 생각이 없는지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img.png 주원이가 볼일을 해결했던 Navvat Lounge Bar



아이비에커가 우리를 여기 브로드웨이 거리로 데려오긴 했지만, 우리가 한낮에 이곳을 관광할 포인트는 딱히 없어 보였다. 나름 세련된 숍과 현대적인 레스토랑이 거리를 채우고 있었지만, 복잡한 서울에서 살다 온 우리에게는 특색은 없었다. 브로드웨이의 진가가 나타나는 건 해가 진 저녁이라고 한다. 모두 더운 한낮에는 야외로 나오지 않다가, 해가 지면 화려한 불빛 아래 길거리 상점도 모두 문을 열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나와 한가로이 산책도 하는 것 같았다.




아이비에커는 갑자기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통화하는 틈을 타, 근처 상점에서 주원이는 오렌지 주스를, 나는 물을 구입했다. 아이비에커가 뭐 마시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는 저 멀찌감치 서서 통화 중이었다.

"아이비에커는 뭐 마신다니?"
엄마가 묻자 나는 콜라를 집어 들었다.
"얘, 무슨 콜라를 사니?"
"엄마, 쟤 등치 봐봐. 왠지 콜라 좋아할 것 같아."
우리가 콜라를 사든 말든 계속 통화하는 아이비에커를 뒤로 하고 우리는 잠시 매점 옆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주원이가 너무 더워서 얼굴 전체가 발그레해졌다. 더 버티다가는 일사병이 걸릴 것 같은 위기였다.

img.png 우리가 앉아 쉬었던 브로드웨이 매점 옆 벤치(트립어드바이저에서 캡처함)



아이스크림 가게 옆 간이테이블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어떤 히잡 쓴 예쁜 여인이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주었다. 어여쁜 그 여인은 영어도 참 잘했다. 자신의 아들 주려고 2개를 샀는데, 아들이 안 먹는다고 해서 버릴 수는 없어서 우리한테 준거라고 한다. 입도 안 된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이미 반쯤 녹아있었다. 아이비에커는 계속 통화하고 있고, 날씨는 덥고, 주원이는 더워서 맥을 못 추고 있고, 엄마는 그런 주원이에게 녹은 아이스크림을 먹이고 있고... 산만한 상황에 나는 자꾸만 멍해졌다. 우리에게 집중도 안 할 거면서, 길게 통화만 계속했던 아이비에커가 무뚝뚝하게 느껴졌다.


아이비에커는 통화가 끝나자 브로드웨이 거리도 다 봤으면 이제 밥 먹으러 가자며, 벤치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말했다.


"저녁에 우리 집에 초대할게. 부모님한테 얘기했고, 우리 와이프랑 모두 식사준비할 거야."


멀찌감치 서서 통화했던 내용은 바로 우리에 관한 것이었던 것이다. 외국인 친구가 갑자기 왔고, 또 자기네 집에 초대하고 싶어서 가족들과 그렇게 긴긴 통화를 했었다니...

브로드웨이거리에는 거의 10분도 안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내가 산 콜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앞서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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