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시티에서의 어색한 대화

"몇 년만이지? 15년 만인가?"

by 박수소리

아이비에커도 티무르 박물관에서 지루해 하는 주원이가 영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아이비에커는 다음 관광지로 타슈켄트의 테마파크 매직시티파크(Magic City Park)에 데려갔다. 유럽풍의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지어져 있었고, 각종 상점들이 즐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에버랜드나 롯데월드를 생각하면 일인당 입장료만 해도 몇만 원에 이르기 때문에, 나는 아이비에커가 우리의 모든 입장료들을 부담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매직시티파크는 그냥 유럽풍 건물들을 쫙 보기 좋게 지어놓고 상점으로 쓰는 게 전부였으며, 야외형 놀이기구는 없었다. 약간 비유하자면, 파주 아웃렛 같다고나 할까? 입장료도 당연히 없었다.


매직시티파크의 실내놀이터




아이비에커는 앞장서서 걷더니 어느 실내 놀이터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타는 기차와 일부 성인이 공중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놀이기구들이 있었다. 놀이기구들은 모두 번뜩이고 아름다웠지만, 실내 작은 공간에 놀이기구들이 많이 몰려있고, 유동인구도 많아 부산하고 시끄러웠다.


"너의 아들 기차 타볼래?"

주원이는 낯선 장소에 낯선 사람들 속에 혼란스러워 했다. 아이비에커의 성의를 봐서라도, 주원이가 약간의 흥미를 보이면 좋으련만, 주원이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할머니, 무서워요. 저 안 탈래요."를 반복했다.


"우리 딸은 여기 좋아하던데."

아이비에커는 주원이의 반응에 머쓱해했다. 고민하던 아이비에커는 실내놀이터 한쪽 2층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그곳에는 다행히 아이들이 화학처리가 미리 된 흙으로 모양을 만들 수 있는 놀이기구가 있었고, 다행히 이곳은 주원이에게 안정감을 주는 모양인지 놀겠다고 했다. 아이비에커가 요금을 지불했다.



주원이가 흙장난을 시작하는 걸 보자 아이비에커가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내려가있자."


둘이 이야기 하자는 명확한 의사표현이었다. 나는 친정엄마와 주원이를 두고 내려가는게 내키지 않았지만, 아이비에커가 우리에게 해준 접객이 미안해서 그의 기분을 맞춰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에게 주원이를 맡기고 1층으로 내려갔다. 순간 그가 나와 얘기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게 느껴졌다. 그는 모스크, 오페라하우스, 티무르박물관을 거쳐, 나와 만난지 2시간 만에 드디어 단독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가 말을 꺼냈다.


"몇 년만이지? 15년 만인가?"


나는 아이비에커랑 둘이 있게 되니, 어색함을 웃음으로 때우려는 습관이 나왔다.



그와 마지막으로 헤어진 건 15년 전 난징 부근 어느 소도시에서였다. 버스터미널에 그를 데려다주고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의자에서 그는 나에게 말했다.


"우리 엄마가 외국인을 원하지 않으셔.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이렇게 우리는 만날 수 있어."

자존심이 센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으며 "그래. 잘가."라고 말했다. 나도 아이비에커와 결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막상 그 얘기를 듣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네가 원한다면 이렇게 만날 수 있다니? 나는 그 뜻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결혼은 부모님의 뜻에 맞는 우즈베크 사람과 하겠지만, 나와는 별도로 만날 수 있다고. 오해였는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 나는 더 이상 캐묻고 싶지 않았다. 그를 버스 태워 보내고 나는 내 인생에 더 이상 아이비에커는 없다고 선언하고, 이후 그의 모든 연락을 차단했다.

그는 그래도 나에게 연락하려고 했다. 카카오톡도 깔아보고, 스카이프도 해보고, 메일도 보내봤지만 나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6개월이나 지났을까? 회사에서 혼자 야근을 하고 있는데, 어느 한국인 여자가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마 난징에서 함께 유학하던 한국인 친구인듯 했다.


"안녕하세요. 저 아이비에커 친구인데요. 아이비에커가 제발 연락 좀 달래요."

한국인 친구까지 동원해서까지 연락이 온 아이비에커를 두고, 나는 내가 너무 못되게 구는 건가 싶었다. 조명이 절반 정도 꺼진 사무실에서 혼자 야근을 하다가, 아무래도 이렇게 까지 매정한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스카이프로 아이비에커에게 연락했다.
수화기 너머로 아이비에커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 이제 우즈벡 석유공사에 취직했어. 이제 나 돈 벌어. 월급이 한 달에 500 미국 달러야."

그는 나보다 2년 늦게 학생신분을 탈출해 스스로 벌이를 할 수 있게 된 소식을 기쁘게 전했다.

"은주, 너는 지금 월급이 얼마야?"

나는 그 당시 월 실수령액이 300만원 정도 되었지만 도저히 첫 월급을 받고 행복해하는 아이비에커 앞에서 솔직한 내 월급을 말할 수 없었다.

"어, 나도 그 정도 돼."

그게 그와의 마지막 기억이다. 나는 오래된 인연이 있는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마냥 행복했고, 그를 완전히 잊어버렸고, 떠올린 적도 없었으며, 결혼했다.

그런데, 그가 지금 내 앞에 있다니. 일방적으로 차단을 당한 아이비에커는 긴 세월 동안 궁금했을 것이다. 왜 그랬냐고, 도대체 나한테 왜 그렇게 못되게 굴었냐고.
나는 당황해서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잘 지냈지? 나는 13년간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성제오빠가 추천해서 중앙아시아 놀러 왔지. 만나서 반갑다."
"너랑 서안에 있었을 때 엄마가 아프시고, 또 내가 학자금 빚도 있고, 집안도 어려워서 그때 서안에서 정신상태가 좀 안 좋았어. 너무 어렸었지."

"아참, 나 채식주의자야. 나 고기 안 먹어."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원래부터 큰 눈을 더 크게 뜨기도 하며,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냐고 집요하게 물었던 것 외에는 그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나는 엄청 긴장해있었나 보다.

아이비에커는 곧 점심시간이니 여기 실내놀이터 안에 네가 먹을 만한 거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조용한 식당에 가서 조용히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데, 햄버거나 파는 패스트푸드점에 가려고 하니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곳에는 샐러드 외에 내가 먹을 만한 것은 없었다. 미적지근한 나의 반응에 아이비에커는 주원이 다 놀면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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