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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웃으면서 쓰는 암투병기

by 박수소리

가능하다면 평생 비밀로 하고 싶었다. 말하는 순간 나를 묘사하는 첫 번째 키워드가 그게 될 거니까. 아기엄마, 그리고 중문과 전공자, IT인, 전자서적 출판인 정도가 그동안 정체성을 형용하는 말들이었다면, 그 키워드는 너무 강렬해서 꺼내는 순간, 나의 명함 가장 첫 번째 직위가 될 터였다.


하지만 그날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멀리 사는 친구가 또 아이를 데리고 놀러 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놀러 오면 집에 갈 줄 몰랐다. 아침 10시부터 밤 8시까지... 점심, 저녁을 다 먹고서야 자리를 떴다. 친정집도 아닌데 편하게 놀러 오는 걸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그 횟수가 반복될수록 부담되는 게 사실이었다.

'나 이번 주에도 또 놀러 가도 돼? 남편이 주말 근무한다고 해서.'

친구의 카톡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나는 거절의 빌미로 그 키워드를 써버렸다.

'있잖아. 나 암이야.'


암밍아웃, 참 하고 싶지 않았던 그 일.

감추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마치 장례식장의 상주가 지인들에게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는 것처럼, 내가 암이라고 말하는 순간 다들 기자가 되어 시시콜콜 근황을 캐물을 것이다. 그 후에는 사랑을 조금 얹어 동정하며, 더 나아가서는 참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2025년 나는 말하기 시작했다. 나 암이야.

나는 암환자다. 무려 5년 차 암환자고, 심지어 그 진행단계도 매우 높았고 죽음의 문턱 앞까지 다녀왔지만, 하루하루 바쁘게 잘 지내고 있다. 암환자라고 매일 매시간 암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오늘 저녁에 뭐 먹지, 내일 출근하면 뭐부터 하지, 입을 옷이 없는 데 어떡하지? 같은 사소한 질문들이 삶을 메운다.


암환자라고 비련의 주인공처럼 울고 슬퍼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와 수작을 꾸며 남편에게 짖꿎은 장난을 치기도 하고, 드라마를 보며 가슴 설레기도 하며, 뭐 돈을 어떻게 벌지, 구매한 주식은 잘 지내고 있는지 들여다보기도 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암을 잊어버리고 잘 살고 있는 내가 이제야 암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한다. 5년 만에 왜 글을 쓰냐고?


여러분과 함께 나의 삶에 왜 암이 찾아왔는지를 탐구해 보고 싶다. 나는 불교의 인연법과, 서양의 끌어당김의 법칙과, 동양의 팔자론을 믿는 편이다. 그렇다면 암도 불청객이 아니라, 나와 인연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삶에 찾아와 준 암에게 감사하다. 질병으로 인해서 나는 맹물이었다가 보이차처럼 삶이 진하고 깊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보이차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갖가지 이야기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나의 병에 관심을 갖는 게 너무 싫었다. 한국 특유의 동정심이 발동하는 그 순간을 못 견뎌했던 것 같다. 괜찮으세요? 좀 어떠세요? 라며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면, 동정의 대상이 된 나는 '당신이 뭐라고 나를 동정해?'같은 마음으로 수치심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처지가 안된 사람이 나의 처지를 보고 '그래도 저 사람도 사는데...' 같은 마음으로 용기를 얻는 걸 보고, 어쩌면 내 이야기가 동정의 대상이 된다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이용당해도 괜찮겠다는 쿨한 마음이 들었다. 삶이 불행하거나 아픈 사람들이 나를 보고 '그래도 내가 저 사람보다야 낫지'하는 용기를 얻는다면, 뭐 나의 병이 한몫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옆에서 자고 있는 8살 아이가 어른이 되어 삶의 역경이 찾아왔을 때, 까불까불 장난치던 엄마가 사실은 이렇게 어려웠노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기보다 사는 걸 선택했다는 걸 알 수 있도록 그 기록을 남기고 싶다.


웃으면서 시작해 본다. 나의 암 탐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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