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관람
아지즈는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호텔 앞에 와서 전화했다.
"누나, 저 왔어요. 어디세요?"
어제 저녁에 택시에서 처음 봤을 뿐인데, 어제에 이어 아침부터 '누나'가 시작되었다. 나는 누나라고 불리우는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척 쿨하게 인사를 하며 택시를 탔다.
아지즈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레기스탄이었다. 레기스탄의 입장료는 성인 외국인의 경우 4만 숨, 우리나라 돈으로 어림잡아 4500원 정도 되었는데, 외국인과 내국인의 입장료를 차별하지 않는 한국문화재 입장료 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더구나, 우즈베키스탄 물가와 비교해보면 외국인을 호구로 보는 게 분명했다. 비싼 입장료 때문일까? 어쩐지 인스타그램에 레기스탄 검색해보면 레기스탄 입장도 하지 않은 채, 레기스탄 전체가 조망되도록 찍은 사진이 많았다.
흐물흐물한 분홍 카라티를 입은 아지즈는 무슨 생각인지 우리보다 앞서서 걷고는, 싱글벙글대며 레기스탄 매표소 직원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오전인데다, 레기스탄에 돈 내고 들어가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인지 매표소에는 아무도 줄 서있지 않았다. 아살람 알레이쿰으로 시작된 수다는 한참 이어지더니, 아지즈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누나, 우리는 공짜에요. 좋죠?"
알고보니, 아지즈의 아내의 이모부가 사마르칸트의 다른 문화재에서 매표관리업무를 맡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레기스탄 매표소 직원과 아지즈의 처이모부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도 아닌 것 같은데, 뭐 어쩌다 보니 우리 외국인들도 문화재 내부자 취급을 받게 되었다. 아지즈에게 레기스탄 설명을 간단하게 부탁했지만, 아지즈는 말했다.
"누나, 나 레기스탄 역사 몰라요. 나 사마르칸트 사람인데 여기 처음 들어와봤어요. 저기 영어 가이드 있어요."
엄마는 아지즈에게 문화재의 설명을 부탁한 나를 흘겨보며 날카롭게 속삭였다.
"얘는! 부탁할껄 부탁해라. 딱 보면 모르니, 너라면 경복궁 설명할 수 있니."
그렇다. 바랄껄 바래야지. 한국말을 잘하는 우즈베키스탄 현지인을 만난 데다, 가족을 이끄는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서 나는 너무 기대를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바지, 아름다운 구두를 신고, 진한 루즈에 진한 속눈썹을 그린, 또 현지인 답지 않게 양산을 가지고 다니는 영어가이드가 1시간에 미화 10달러라고 했다. 1시간에 만원이 넘는 금액이라... 아무리 영어가이드라도 그렇지, 우즈베키스탄 물가에 비하면 너무 비쌌다. 나는 순간 주저했지만 사마르칸트의 첫 관광 아닌가. 과감히 투자하기로 했다. 현지인 가이드는 정말 오랜만에 가이드를 하는지, 우리가 순순히 돈을 내는게 약간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현금을 받았다.
가이드는 영어로 설명을 하고, 나는 엄마에게 한국어로 통역해주었는데, 영어를 모르는 아지즈는 옆에서 내 한국어설명을 흘려듣고는 자신이 문화재에 궁금한 점을 가이드에게 우즈베크어로 질문하고, 다시 가이드는 우즈베크어로 아지즈에게 답변했다. 물론 아지즈는 자신이 가이드와 어떤 내용을 이야기 나누었는지 절대 우리에게 추가 설명해주지 않았다. 이렇듯 3개 언어가 동시에 존재하니, 뭐 하나 설명하는데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영어 가이드는 영어 발음은 빼어났지만, 설명이나 스토리 텔링이 너무 부실했다. 역사에 대한 깊은 설명은 다 생략하고, 같은 내용이 계속 반복되었다. 이맘(이슬람의 종교지도자)이 서는 연단이나, 마드라사의 기본 건축양식은 이미 부하라와 히바에서 여러 번 학습한 바 있어 새로운 내용이 아니었다. 심지어 엄마는 내가 하는 한국어 통역을 듣다가 문득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신경질적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는 다 신학교고, 지진 때 첨탑이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는 거 아냐. 그런 내용은 알겠으니까 통역하지마."
감기로 컨디션이 안 좋은 엄마는 작은 것에도 확실히 민감했다. 그 이후로 나는 통역을 하지 않아도 되서 좀 편했지만, 솔직히 영어가이드를 10불 주고 쓴 건 좀 후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기스탄은 확실히 흥미로운 점이 있었는데, 우상숭배를 경계하는 이슬람 문화에서 쉬르도르 메드레세(Sher-Dor Madrassah)에 떡하니 사슴을 쫓는 호랑이와 호랑이 위에 있는 사람얼굴의 해가 그려져 있는 게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도 어딜 가나 이슬람 건축양식에서는 우상숭배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어딜 가나 메카방향만 표시하고, 기하학적 무늬로 가득한데, 이런 구체적인 그림이 있었다는 건 이슬람 규율을 무시할 만큼 파격적이고 강한 왕권이 존재했음이 분명했다. 실제로 이 메드레세 내의 그림은 영주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인간과 동물의 모습을 담게 했다고 한다. 현재 우즈베크에서 통용되고 있는 200 숨 짜리 지폐 도안도 여기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두피디아 참조)
가이드가 이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할 때 나는 앞서 통역한 내용과 겹치지 않는 내용이라 엄마에게 통역을 해드렸지만, 엄마는 컨디션 난조로 이미 마드라사에 흥미를 잃은 듯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고개를 올려 그림을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물론 사진도 찍지 않았다. 주원이는 마드라사가 재미가 없어서, 가뜩이나 컨디션 난조인 할머니의 손을 잡고 흔들며 몸을 베베 꼬고 있었다. 10불이나 냈는데, 영어발음만 좋으면서 몹시 부실한 영어가이드의 설명이 실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빨리 끝날 것 같아서 다행스러웠다.
마드라사에 존재하는 작은 방들은 그 어떤 설명도 적혀있거나 특색있게 꾸며지지 않았고 대부분 기념품샵으로 쓰고 있었다. 어느 방을 들어가나 같은 공장에서 생산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털모자, 양탄자, 실크스카프, 냉장고 자석, 유적지와 상관없는 조악한 플라스틱 장난감을 팔고 있었는데, 가격이 각각의 샵 주인과 협상하기 나름이라는 점이 다를 뿐 모든 작은 방을 들어가 볼 필요는 없었다. 그중 가이드가 인도한 작은 방에는 기념품샵을 지나 아주 작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2층에 가니, 사람 크기의 남자인형 3명이 당시 마드라사 2층에서 숙식했었던 것을 재현하고 있었다. 즉 학생 3~5명이 선생님과 함께 지내며, 낮동안은 1층에서 공부를 하고, 밤에는 2층에서 기거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남자인형들을 보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시 1층으로 내려오니 가이드는 굳이 설명할 필요없는 기념품을 문화재라도 되는 것처럼 영어로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약속한 1시간이 이 기념품샵에서 얼른 끝나기를 기다리는 양. 기념품샵에 오랜만에 찾아온 외국인에게 기념품샵 주인은 적극적으로 뭐라도 팔아볼 셈으로 "마담, 하우머치(How much)"를 연발하며 실크스카프를 들이댔다.
"엄마, 저 오줌마려워요."
주원이의 한마디에 우리 모두는 황급히 기념품샵에서 나와 레기스탄의 가장 뒤쪽에 있는 화장실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주원이는 거대한 레기스탄에서 건물 가장 구석탱이에 있는 화장실까지 가는 기나긴 시간 동안 오줌 한방울도 흘리지 않았고, 프로 5살 답게 화장실에서 참았던 많은 양의 오줌을 모두 배출해 주었다. 우리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화장실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약속한 1시간은 모두 끝났어요. 10불을 더 내면, 저쪽을 더 설명해줄께요."
우리는 가이드와 원하던 작별인사를 하고, 아무 기념품샵에 다시 들어가 레기스탄 냉장고 자석을 하나 사서 거대한 레기스탄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