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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소리 Mar 31. 2023

택시기사가 나를 누나라고 불렀다.

외국인노동자 출신 아지즈

외국인노동자 출신 아지즈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얀덱스로 택시를 불렀다. 사마르칸트는 역시 대도시라서 히바 도시 전체나 부하라기차역 부근에서 통하지 않던 얀덱스 택시가 바로 잡혔다. 하얀 쉐보레 택시가 식당 앞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유아차를 가지고 있는 걸 보고 택시기사 아저씨가 트렁크에 실어주려고 택시에서 내렸다.   "한국 사람 맞죠? 한국식당에서 나오는 거보니 맞네요."
영락없이 우즈베키스탄 현지인처럼 생긴 분홍색셔츠 입은 택시기사 아저씨가 한국말을 너무 잘하시는 게 아닌가. 택시기사 아저씨인 아지즈(Aziz)는 알고 보니 안산에서 외국인노동자 비자를 받아 농사일을 오래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만 8년을 일하고, 돈은 여기로 다 부쳤다고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비자가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사마르칸트에서 택시업을 시작했다고.
 "혹시 나이가 몇이에요? 나 33살이에요. 뒤에 누나 애기에요? 나도 애기 2명 있어요."
 내가 내 나이를 밝히자 아지즈는 바로 나에게 누나라고 불렀다.
 "누나, 나이보다 젊어보여요. 누나라고 부를게요."
 아지즈는 한국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누나 소리가 바로 나왔다. 아지즈는 말할 때마다 나한테 누나 누나 하는데, 정작 나는 어색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한국에서는 사적인 사이에서만 누나라고 하지 않나. 아무리 택시기사가 나보다 어리다 한들 바로 누나라고 하는건 좀... 게다가 나보다 더 나이가 훨씬 많이 들어 보이는 우즈베키스탄 현지인이  '누나'라고 하자 나도 네.네. 하며 호응은 했지만, 영 불편했다.
 "나 한국 너무 좋아해요. 한국 음식 맛있어. 사장님 친절해. 돈 많이 벌 수 있어. 우즈베키스탄은 돈  많이 못 벌어요. 다시 가고 싶어요."
 외국인 노동자들의 피해사례만 잔뜩 들으며 외국인노동자들을 일방적인 피해자이자 서비스 공급자로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한국 외국인노동자 출신 우즈베키스탄 현지인들은 모두 한국이 너무 좋다며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 눈빛은 내가 한국인이라서 아첨하거나 호감을 표시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아지즈는 한국의 농장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했다고 한다. 비닐하우스에서 여러 채소들을 수확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한 듯했다. 바쁠 때는 일요일에도 일했다는데, 그런 긴 노동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욕하는 법이 없었다. 아지즈는 자신이 한국에 있을 때 기회가 되어 친구들하고 같이 일본도 놀러 가봤다면서 자랑했다.




 한국식당에서 밥을 먹고 배도 부른데다, 아저씨가 한국말을 하니 사마르칸트가 너무나도 편하게 느껴졌다. 사마르칸트는 도시 전체적으로 도로가 넓고 도로에 비하면 차도 붐비지 않아, 금방 숙소에 도착했다.
 뒤에 앉은 엄마는 여전히 콜록콜록 댔고, 주원이도 피곤해했다. 내일 저 둘을 데리고 관광을 어찌 다니나 생각하던 차에 한국말을 너무 잘하는 아지즈를 만나니 아지즈의 도움을 좀 받고 싶었다. 통역에 길 찾기 등을 아지즈와 나누어 할 수 있다면 내일 하루 겉기로 사마르칸트 보기에 편할 것 같았다.
 "아지즈, 내일 시간 있어요? 내일 아지즈가 관광가이드해줄 수 있어요? 하루 택시비로 30불 정도 주면 될까요?"
 "택시로 하루종일? (함박웃음) 나 시간 있어요. 그런데 나 역사 몰라요. 레기스탄 데려다줄 수 있어요. 유명한데 알아요. 갈 수 있어요."
 아지즈는 말하면 말할 수록 한국어의 밑천이 드러났다. 아무렴 어쩌랴. 구글 번역기 없이 몇 마디라도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했다.  


 호텔(시설은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이 분명했지만, 간판이 호텔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나도 호텔로 적는다)에 도착하여 택시를 내리자, 호텔 주인아주머니와 남자직원도 자동차에서 검은 봉지들을 손에 잔뜩 들고 호텔로 옮기는 중이었다. 검은 봉지에는 상추, 딜 등이 삐죽삐죽 나와있었다. 나를 보자, 영어를 몇 마디는 할 줄 아는 남자직원이 나에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거 베지테리언 음식이에요. 당신의 아침식사에요. 걱정 마세요."

 알고보니 호텔 주인아주머니와 남자직원은 내가 우유도, 버터도, 계란도, 고기도 안 먹는다고 하자, 뭘 아침식사로 내야 하나 엄청난 토론 끝에 다시 장을 보러 갔다 왔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의 비건식

 다음날 아침 야외식당으로 나가보니 아주머니와 남자직원이 시장에서 사 온 재료들이 순차적으로 나왔다. 오이와 토마토, 수박, 자두, 살구, 푸석한 사과, 그리고 오렌지, 그리고 딱딱한 빵이 나왔다. 라그만에 조금 얹어먹는 딜을 비롯한 향신채들도 따로 그릇에 담아왔다. 이 정도면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생채식과 유사했다. 풍성하고 신선했지만 정말 풀떼기 밖에 없었다. 채식을 하다 보면 사람들에게 받는 오해가 딱 그것이었다. 채식주의자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잔디밭에 펼쳐진 풀들이라는 것. 호텔 주인아주머니와 남자직원이 차려준 식단을 보니, 이 분들도 채식주의자는 풀 위주로 먹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았다. 뜨끈한 수프도 없었지만, 과거 나는 생채식을 해보았기에 오랜만에 신선식품을 씹기 시작했다. 다른 과일들은 다 맛있었는데 사과는 좀 푸석했다(많은 나라를 가보았지만 역시 사과는 한국이 최고였다). 여행 내내 중앙아시아에서 파는 사과는 맛있는 게 거의 없었다. 푸석하고 작고 밍밍했다. 중앙아시아가 과일의 천국이라고 하는데, 잘 재배가 안 되는 품종도 있나 보다.

호텔 비건 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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