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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소리 Mar 29. 2023

사마르칸트의 트램은 1자로만 설계되어 있다.

사마르칸트에 도착하다.

부하라에서 사마르칸트까지 탄 고속철


 쾌적한 고속열차를 타고 2시간 26분 만에 사마르칸트 기차역에 도착했다. 사마르칸트도 부하라 정도의 도시겠지 했는데, 내리자마자 느껴진 도시의 규모는 타슈켄트급이었다. 내가 그렇게 판단한 아주 단순한 이유는 사마르칸트 기차역 앞에 트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차, 버스, 트램 등 모든 교통수단의 마니아였던 주원이는 기차역 앞에 멈춰있는 트램을 보고 할머니의 손을 이끌었다.
 "저 트램 타고 싶어요."

사마르칸트 트램(인터넷에서 발췌)



 멈춰있는 트램 앞에서 내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주원이가 방긋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나는 순간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그래. 사마르칸트는 트램이 있을 정도로 대도시니까 트램을 타고 도시를 배낭여행자처럼 다니는 거야. 유럽에서도 트램 타고 다녔잖아. 얼마나 낭만적이야. 주원이도 좋아할 거야. 나는 기대에 부풀어올라, 버스정류장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택시기사들에게 우리의 숙소를 구글맵으로 보여주며 어느 트램에 타야 하는지 물었지만 이 지역 트램은 내가 원하는 곳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사마르칸트 트램은 그저 1자로 제한된 지역에서만 운행하고 있었다. 사마르칸트 트램은 오래된 교통수단은 아니었고, 2017년 4월에 공식 개통되었다고 하니(출처) 사마르칸트의 주요 교통수단은 아닌듯 했다.

사마르칸트 트램1번 노선도(https://wikiroutes.info/en/samarkand?routes=10232) : 도심은 절대 가지 않고 정말 1자로 간다.


사마르칸트 트램2번 노선도(https://wikiroutes.info/en/samarkand?routes=49262) : 가로로 1자로 간다..



 숙소 주인에게 메신저로 우리가 버스 등으로 당신의 숙소에 가는 법에 대해 물었지만, 인사말만 나누었을 때 유창하던 영어는 어디로 가고, 버스정보에 대한 회신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친절한 현지인의 도움으로 적당한 가격에 택시를 잡아 숙소로 떠났다.
 우리가 예약한 호스텔은 사마르칸트 시내에 위치한 대궐 같은 크기였다. 널따란 마당에는 살구나무와 포도나무가 심어져 있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약간은 허름한 2층 짜리 단층 건물이 여러 채였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벌써 7시를 훌쩍 넘겼는데, 우리가 묵을 방은 아직 아주머니가 청소를 진행 중이었다. 호스텔 이름은 월드패밀리게스트하우스였지만, 우리가 러시아어와 우즈베크어 둘 다 못 한다는 걸 알자, 호스텔 직원은 따뜻한 차만 가져다주고 절대 우리에게 말을 시키지 않았다. 방이 청소가 다 되기를 30여분이나 기다려 방에 들어가자 방조차 정말 컸다. 허름하지만 깨끗한 방이었다.

우리가 매일 아침을 먹었던 야외공간(booking.com에서 사진 발췌)


 
 오늘 제대로 먹은 끼니라고는 부하라 호스텔 더운 식당에서 점심에 먹은 미역냉국라면이 전부인 엄마는 한식 아니면 안 된다고 미리 선언하셨다. 조회해보니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반듯하게 정비되어 있는 깨끗한 인도를 따라 유아차를 끌고 걷다 보니 금방 한국식당이 나타났다. 히바에서 부하라 갔을 때는 드디어 사막을 벗어났구나 하고 숨이 쉬어지고, 부하라에서 사마르칸트 오자 드디어 한국음식 먹을 수 있구나 하고 더 숨이 쉬어졌다. 빵과 토마토&오이샐러드만 먹다가 우리가 생각한 한국음식메뉴들이 8페이지나 넘게 휘황찬란하게 펼쳐지는 메뉴판에 마음을 뺏겼다. 굶주린 엄마는 말했다.
 "하루에 한 끼는 무조건 여기 오자."
 비빔밥 2개를 시켰는데, 역시 한국식당답게 감자조림을 비롯한 다양한 반찬들이 8종류나 서빙되었고, 직원들도 모두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 한국식당 답게 한국의 최신 댄스가요들이 흘러나왔고, 조명도 반짝반짝 하니 빛났다. 식당 중앙의 분수는 밤더위를 식혀주었다. 엄마는 노인이 되면 밥도 얼마 못 먹는다고 하시더니, 돌솥비빔밥 한 그릇을 뚝딱하셨다. 플라스틱의 작은 약통을 꺼내다가 비비고 남은 고추장도 모두 깔끔하게 싸셨다. 엄마는 기분이 너무 좋으셨는지, 비자카드로 우리의 음식값을 계산하셨다.



중앙아시아 음식이 단조롭다고 느끼는 이유

 중앙아시아도 사람 사는 곳이고, 우즈베크 사람들은 자기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폭발하는데, 우리는 도대체 여기서 왜 음식다운 음식을 먹는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첫번째로는 음식에 쓰이는 식재료가 다양하지 않다. 주재료는 밀가루로 된 빵과 고기였는데, 이 두 가지 재료로 수많은 음식들이 탄생했다.  Norin은 밀가루면과 고기를 섞은 것이었고, Manti도 밀가루로된 만두피에 고기를 얹은것, Non은 그냥 밀가루빵, 베쉬바르막은 밀전병과 고기, Samsa는 밀가루 속 고기, 보르속은 튀긴 밀가루빵, 라그만은 밀가루면,샤슬릭은 그저 고기. 즉, 메뉴는 다양했지만 결국 빵과 고기의 조합인것이다. 그나마 밀가루와 고기를 벗어난 음식이 중앙아시아식 볶음밥인 플로프(plov)인데, 이 조차 기름밥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기름을 쏟아붓는다. 가뜩이나 고기에서 기름이 나오는데, 식용유까지 들들 볶아버리니 고소하지만 느끼함의 절정을 이루는 것이다.

 둘째로는 간은 소금으로만 하기 때문에 깊은 맛을 느끼기 힘들다. 한국은 발효음식이 발달해서 간장, 고추장, 된장, 토장, 청국장 등 발효된 장으로 하는 반면, 우즈베크 등 중앙아시아는 유목민 출신이라 그런지, 아니면 지대가 워낙 건조해서 발효가 안 되서 그런지 발효소스가 없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중앙아시아에서 샐러드를 시키면 오이와 토마토에 소금, 후추를 뿌려서 나오는게 대부분이며, 만티(중앙아시아의 만두)를 찍어먹는 요거트에도 소금 간만 살짝 한다. 물론 향신채 등은 추가로 뿌리지만, 간 자체는 소금이 주요소스이기 때문에 소위 깊은 맛은 느낄 수 없다.

 셋째로는 잎채소 요리가 너무 적다. 한국은 시금치며, 갓이며 잎채소를 활용한 요리가 많은 반면, 중앙아시아는 더워서 잎채소가 견디지 못하는 건지는 몰라도, 뿌리채소(당근, 비트 등)와 열매채소(가지, 토마토, 오이 등)에 거의 의존한다. 양배추나 배추도 팔긴 하지만, 잎채소가 주인공인 요리를 아직 접해보지 못했다.  

 엄마는 한국식당에 가서 한번의 식사로 여러가지 식재료를 먹을 수 있고, 깊은 맛이 나는 발효장의 음식을 먹자 드디어 음식을 먹었다고 느낄 수 있었는지, 이제야 정신이 든다고 하셨다. 그동안 빵으로 끼니를 때울때는 배가 불러도 헛배가 부른것 같고, 배가 고파도 중앙아시아 음식 메뉴판만 보면 배가 안 고프다고 하셨다. 기침과 콧물로 안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엄마가 드디어 웃을 수 있어, 사마르칸트의 한식당이 그 존재 자체 만으로 너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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