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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소리 Aug 10. 2023

타슈켄트 재회 3

쿨하지 않은 걸 들키다

한참 우스갯소리를 하던 아이비에커가 순간 얼굴을 굳히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내가 우즈베키스탄에 오냐고 인스타그램에 댓글 달았을 때 너 그 무례한 태도는 뭐야.(对了,我当初在你的Instagram留言的时候,你这是什么态度?)"


 6개월이나 회사에서 인계자를 뽑지 못해 질질 끌다 퇴사를 하고는, 나 퇴사하고도 즐겁게 잘 살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서 직장동료 몇 명이 연결되어 있는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키르기스스탄 입국 소식을 전했다. 이미 죽어버린 페이스북 세계처럼, 15년 동안이나 연락이 없던 아이비에커가 인스타그램을 쓰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아이비에커가 그 키르기스스탄 공항 사진에 첫 댓글을 달았다.

 "니하오 은주, 너 우즈베키스탄도 오는 거니?"

 와.... 지난 15년간 살아있는 줄도 모르던 사람이 책 속에서 부활한 느낌이었다. 15년 전 사랑했던 사람, 그러나 지금은 사랑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사람, 그리고 다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분류된 사람. 그러나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반가운 인사말 하나 없이 댓글을 달았다.

 "갈 수도 있지만, 언제 갈지 몰라."

 그 댓글 이후 다시 아이비에커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이걸 묻고 싶어서 아이비에커가 오늘 나를 만나러 여기 온 거구나. 지난 첫 만남 때는 가족들과 함께 있었을 때 꺼내지도 않은 화제였다. 나는 그의 굳은 목소리를 인지하고는, 주원이의 입에 빵을 넣어주다 말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제 서로 쿨한 '척', 연기하는 '척'은 그만하고 어디 끝까지 가보겠다는 거지, 너. 나도 할 말 못 하던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너 결혼했잖아.(你不是结婚了吗?)"
 아이비에커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목소리가 더 커져서 그가 따지기 시작했다.
 "너, 지금 15년 전 상황하고 혼동하지 마. 그리고 너도 결혼했잖아. 나도 결혼했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你别把15年前的事情和现在搞不清楚,你也不是结婚了吗。我也结婚了。到了现在那有什么关系吗?)
 

 그래. 너는 그렇게 쿨할 수 있다 이거지. 세월이 지나서 나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어서 전 여자 친구이든 다 볼 수 있다는 거지. 그의 쿨함에 내심 기가 막혔다. 나는 그렇게 쿨하지 못한 환경에서 나고 자라서, 결혼하면 전 남자 친구는 보지 않는 게 맞다고 배웠다 왜. 나는 너랑 있었던 일을 다 까먹지 않아서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너한테 쿨할 수 없다 왜. 할리우드야 뭐야. 아이비에커의 So-cool함에 말문이 막혀 나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진 채 주원이에게 "주원아, 아~"하면서 숟가락으로 밥먹이기에 바빴다.

 

 분명 나는 여행 중에 결심하지 않았나. 그를 다시 만나게 되면, 과거에 내가 회피했고, 숨었고, 그로 인해 너에게 상처를 입혔다면 미안하다고, 그리고 이번에 접대해 줘서 고맙다고 하기로. 그런데 그가 대뜸 화를 내니 여행 때 생각했던 시나리오가 없어지고, 너 결혼했잖아 같은 대사가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그런데 밥먹이면서 생각해 보니 그의 문화권이야 말로 쿨하지 않은 초초초 보수주의의 끝판왕 무슬림 국가 아닌가.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네 와이프가 내가 너랑 그런 관계였다는 걸 알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니?“(如果你的妻子知道了我跟你的过去,她会高兴吗?)
 "내 와이프가 그걸 알 필요도 없는 거고, 말할 필요도 없는 거지.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我妻子不需要知道这些,我也不需要告诉她。过去就是过去)"
 그 대답에서 나는 그도 사실은 나만큼 쿨하지 않은데 쿨한 척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눈이 순식간에 충혈되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우리 얼마나 순수하게 서로 사랑했니. 너는 그걸 소중히 생각해야지 도대체 그게 무슨 태도야.(你应该珍惜我们当时那么纯纯的相爱。你那是什么态度。)"

 "야, 내가 간다고는 답변 달았잖아. 언제 갈지 모른다고도 했고. 진짜 언제 갈지 몰라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야."
 "아니, 니 태도가 진짜 별로였어. 인스타그램 다시 까봐. 댓글 다시 보라고"

 와... 댓글 한 줄에 이렇게 따질일이야? 아이비에커는 자신의 아이폰을 켜고 인스타그램을 실행시키며 당시 내가 달았던 댓글에 사과라도 받으려는 듯 자신의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애 밥먹이다가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나는 순간 어이가 없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웃기 시작했다. 내가 웃자,  핸드폰을 들이밀던 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못 말리겠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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