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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팽나무 Dec 07. 2021

가벼운 밥상

 


허공에 차려진 밥상이 소박하다. 파란 하늘을 바닥에 깔고 밋밋한 나뭇가지 몇 개 격자무늬로 펼쳐 놓았다. 덜렁 밥그릇만 놓기가 민망한 건 배경이 유난히도 파랗기 때문일 거다. 네 그릇의 밥이 놓여 있다. 하늘 상에 차려진 주홍색 감이다. 두 개만이 고봉이고 두 개는 반 그릇만 남았다. 식구들은 다 어디로 갔나. 새 한 마리가 반쯤 남은 감을 쪼아먹는다. 까치는 몹시도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그런데 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옆에 소복하게 담긴 고봉밥이 두 개나 있는데도 아랑곳없다. 그저 얼마 남지 않은 밥그릇에 고개를 들이밀고 있다. 그것도 잠시, 허기를 채웠는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 버린다. 미련도 식탐도 없는 저 가벼운 몸짓, 허공을 날쌔게 날아다니는 조류는 몸속에 욕심 주머니가 없나 보다. 까치가 날아간 뒤에도 감은 얼마쯤 남았다. 다음을 기약한 것인지, 다른 까치를 배려한 것인지 모르겠다.

 도시에서 좀체 볼 수 없는 광경을 접한 건 시골 어느 마을에서다. 낮고 아담한 흙담 안에 기와집 한 채가 갓짓했다. 담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건 감나무 한그루였다. 말라비틀어진 이파리 몇 개만이 달린 앙상한 나무 우듬지, 하지만 거기에는 넉넉한 인심이 있었다. 잘 익은 감을 따지 않고 남겨둔 건 주인의 배려일터였다. 그 마음을 아는가. 새들도 서로를 생각하는 모양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단숨에 먹어 치우지 않고 나눠 먹느라 저렇게 남겨두는 것이겠지. 그 맑은 풍경 앞에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밥상이 생각난다.

 사람이 밥을 먹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과정이 필요하건만 정작 말끔하게 먹는 것도  아니다. 버려진 음식은 환경을 오염시키고 과식은 건강을 해친다. 조류의 식사 앞에 인간의 식탐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새들처럼 지극히 단조로운 식사를 할 수는 없지만, 하루에 한 번이라도 가벼운 밥상 앞에 앉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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