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누운 아이들은 육체만을 남긴 채 영혼을 비롯한 '정신'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것들은 모두 떠나보낸 것처럼 아무 움직임이 없다. 나이대가 다양한 아이들의 두부에는 수십 개의 흡착 센서가 부착되어 있다. 수십 가닥의 전선은 벽에 설치된 관을 통해 한줄기로 모인 뒤 투명한 회색빛의 거대한 기계장치로 집결했다.
대낮의 납치극
가로수 아래를 지나던 아이는 떨어진 나뭇가지를 집어 든다. 아이의 손은 나뭇가지에 묻어있던 흙먼지로 엉망이 된다. 엄마는 "지지! 그런 거 주으면 안 돼!" 하며 아이를 타이른다. 아이는 엄마의 "지지"라는 말이 가진 의미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처럼 나뭇가지를 땅에 던져버린다. 그리곤 그 옆의 작은 돌멩이를 집어 든다. 엄마는 다시 "에이~ 아가! 돌멩이 지지!" 하며 아이를 얼르고 달래 본다. 이번에는 아이가 돌을 내려놓지 않고 버틴다. "위험해~ 얼른 버리고 손 닦자. 얼른!" 하고 말해보지만 돌멩이를 움켜쥔 아이의 손은 요지부동이다.
엄마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든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막대사탕을 눈앞에 흔들며 손바닥을 내민다. 아이는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을 내밀어 막대사탕을 집으려 하지만 엄마는 사정거리 밖으로 사탕을 살짝 빼며 약을 올린다. 엄마는 의도가 분명한 눈동자로 아이와 눈을 맞추고 말한다. "그 돌멩이 내려놓으면 사탕 줄게. 어때?" 하지만 아이는 막무가내로 사탕을 집으러 달려들고 한차례 실랑이 끝에 바닥에 고꾸라진 아이는 대성통곡을 시작한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안아 들고 막대사탕을 내어주고 만다.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방긋 웃으며 막대사탕을 입에 넣는다. 여전히 아이의 다른 손에는 돌멩이 하나가 꼭 쥐어져 있다.
두 살배기 아이에게 세상은 온통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호기심의 대상은 엄마에게는 위험하고 지저분한 것들이다. "지지"와 "안돼"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언어지만 동시에 아이를 구속하는 주문이기도 하다. 엄마와의 자유 투쟁에서 승리한 아이의 손에 쥐어진 하나의 돌멩이. 돌멩이는 아이에게 소중한 보물과 같고 투쟁의 순간 아이에게 엄마는 소중한 보물을 빼앗으려 드는 심술쟁이 약탈꾼일 뿐이다. 나뭇가지를 버린 것은 단지 그보다 더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평화협정에 실패한 엄마는 결국 어른의 입장에서 가장 쉽지만 결코 해서는 안될 마지막 방법을 택한다. 아이의 손에서 가차 없이 돌멩이를 빼앗아 버린 엄마는 물티슈를 꺼내 아이의 손을 꼼꼼히 닦아준다. 순식간에 보물을 강탈당한 아이는 이번에도 대성통곡 신공을 시전 하려 하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주춤한다. 아이는 웃음기가 사라진 엄마의 표정을 보며 입술을 깨문다. 상처 입은 맹수의 눈빛으로 엄마를 노려보지만 엄마는 그 눈빛에 담긴 언어를 애써 무시한다.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엄마와 아이의 눈치 다툼은 2차 세계대전을 방불케 한다. 첨예한 대립의 순간, 두 사람 옆으로 스포츠카 한 대가 굉음과 함께 지나간다.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고 엄마는 놀란 아이를 품에 감싸 안으며 토끼 눈을 뜨고 스포츠카를 노려본다. 예상치 못한 적의 등장에 엄마와 아이는 잠시 정전 태세에 돌입한다. 괜히 지나가던 상선을 침몰시킨 탓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망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미국으로 하여금 대서양을 건너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만든 독일의 U-Boat처럼, 시골 동네 한복판을 질주하던 스포츠카의 배기소음은 아이와 엄마의 이목을 한쪽으로 집중시키며 세상은 위험하다는 일반화된 아이디어에 불을 붙인다. 아이는 귀청을 울리는 소리에 놀라면서도 포근한 엄마의 품 안에서 귀를 쫑긋 세우며 위험의 의미를 탐색하는 눈치다.
그렇게 2차 돌멩이 대전은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아이는 한 손으로는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다른 손에 쥔 막대사탕을 혓바닥으로 맛본다. 다시금 산책을 시작한 두 사람. 엄마는 아이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춘다. 그런데 옆을 지나던 한 남성이 아이를 냅다 낚아채곤 눈부신 속도로 멀어진다. 엄마는 잠시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듯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뒤따라 달리며 소리친다. 아이는 그저 이 상황이 신이 날 뿐이다. 이토록 빠른 속도가 존재할 줄이야. 어른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광경은 그동안 보아온 세상과 완전히 다르다. 급격히 멀어지는 풍경에 비하면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나 돌멩이 따위는 하찮게 느껴졌다. 당황하고 분노에 찬 표정으로 뒤쫓아 달려오는 엄마의 모습도 그저 흥미진진한 모험의 일부일 뿐이다.
"도와주세요! 납치예요 납치! 누가 그 남자 좀 잡아주세요!" 해가 쨍쨍한 대낮에 눈에 띄는 대로변에서 아이를 들고뛰는 납치범이라니. 현실성이 없어 보였지만 엄마의 표정에는 거짓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절박한 외침에도 아랑곳없이 납치범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모퉁이를 돌아 골목으로 사라졌다.
엄마의 사정
아이 셋에 남편 하나, 어쩔 수 없는 내 입까지. 다섯 식구가 배를 채우려면 10인용 밥솥으로도 하루 두 번씩 밥을 해야 하고 밑반찬은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 김을 굽고 만두를 찌고 고기를 굽고 국을 끓인다. 차려놓고 보면 별 볼 일 없는 한 상 차리기가 힘들고 버거운 현실이 양 어깨를 짓누른다. 끼니의 마무리는 언제나 설거지 전쟁이다. 수북이 쌓인 그릇과 냄비를 보는 그녀의 입술 사이로 한숨이 비어져 나온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막내 아이가 남는다. 오늘따라 어디가 불편한지 오전 내내 징징대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산책을 나왔다. 두 살배기 막내 아이는 몇 걸음 걷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한다. 길바닥에는 아이스크림 껍데기나 담배꽁초 같은 것들이 즐비하다. 아이는 아슬아슬한 걸음으로 그 사이를 배회한다. 타일러도 듣지 않는 아이를 고운 말로 달래자니 뱃속에 사리가 생기는 기분이다. 문득 식도 너머로 쓴 물이 올라왔다. 아이 셋을 챙기다 아침도 거른 탓인가 보다. 이런 걸로 속상하지 않으려 다짐했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
매번 밥투정하기 바쁜 아이들의 미운 얼굴이 갑작스레 떠오른다. 저 먹은 그릇 치우는 것도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지 못했다는 성실하지 못한 부모의 자책이 엄마의 마음도 몰라주는 아이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치환된다. 궂은일이나 하기 싫은 일은 모두 내게 배당된다는 느낌이 그런 섭섭함에 양념을 친다. '누가 저 아이들을 데려가 버렸으면.'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사이트를 알게 된 건 그때 즈음이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아이와 함께 그곳에 나타나면 감쪽같이 아이를 데려가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말도 안 되는 사이트라고 무시했지만 남편과 다투고 못하던 소주를 잔뜩 들이켠 그녀는 홧김에 매일 막내 아이를 산책시키는 시간과 장소를 써넣고 [요청하기] 버튼을 클릭했다. 빨간 경고창에 그들이 내건 조건 몇 가지가 전시되었지만 만취한 그녀의 의식에는 아무런 자취가 남지 않았다. 경고 창의 첫 줄에는 '납치된 아이를 절대 찾아 나서면 안 됩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홧김에 요청 버튼을 누른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그녀는 한 동안 아이가 사라질 것에 대한 걱정으로 전전긍긍했다. 시간이 흐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역시 장난에 불과한 사이트였다며 기억에서 지운 지 오래였다. 하지만 막상 백주대낮에 갑자기 막내 아이를 둘러업고 멀어지는 한 사내의 등짝을 마주하자 문득 잊어버린 줄 알았던 충격적인 기억이 하나둘씩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럼 이게 일 년 전 그 납치 사이트에 요청한 게 실행되는 거란 말이야?!' 전봇대를 부여잡고 가쁜 호흡을 내쉬던 그녀의 안색은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