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의 납치극 - 2

후회

by 작가 전우형

* 1편에서 이어집니다.


도둑맞은 아이


'드라마에서나 등장할법한 일이 내게 벌어지다니.'

그녀는 아까의 장면을 수도 없이 되돌려 보았지만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초점이 사라진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그녀는 깊은 숨을 한번 내쉬고는 양 팔을 쭈욱 폈다가 손바닥을 완전히 펼친 후 이를 앙다물고 양 볼을 향해 있는 힘껏 당겼다.


"짜악!"


강한 운동에너지를 가진 단단한 가죽과 부드러운 피부가 다수의 접점으로 동시에 마주칠 때 발생하는 효과음이 조용하던 방의 침묵을 깨트렸다. 아팠다. 감각세포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통각 세포가 말초신경계통을 통해 전달하는 고통은 더할 나위 없이 직설적이었다. 양 볼에서 느껴지는 고통 탓에 정신은 명료해졌지만 상황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어쩌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남편과 상의할까?'

그녀는 고개를 거칠게 좌우로 흔들었다.

"안돼! 그럴 순 없어!"

생각이 간헐적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녀는 계속해서 혼잣말을 내뱉고 있었다.

"전화해서 뭐라고 하냐고! [여보 미안해 내가 장난인 줄 알고 아이 납치 사이트에 막내를 납치해달라고 요청을 보냈는데, 이를 어쩌지? 아이가 정말로 납치되어버렸어.] 이렇게 설명해?! 말이 되는 이야기냐고 이게!"

'미쳤냐는 말 밖에 더 듣겠어?'

그녀는 실성한 여자처럼 머리를 양 손으로 움켜쥔 채 고개를 떨구었다. 한차례 휘청이던 그녀는 벽에 의지해 가까스로 균형을 되찾았다. 극심한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단단한 무언가를 밟은 탓에 힘겹게 눈을 떴을 때, 막내 아이가 좀 전까지 가지고 놀던 자석 블록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슴에 납덩이를 얹은 듯 묵직한 통증이 몰려왔다. 그녀는 답답한 신음을 토하다가 자세가 허물어지며 주저앉고 말았다.

'난 엄마도 아냐...'

입술 사이로 흐느낌이 묻어 나오는데도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더 지체되기 전에 경찰에 신고하는 게 나은 방법이 아닐까?'

한참 동안 아고라 밖으로 밀려나 있던 이성의 목소리가 그녀를 자극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맞아. 시간이 지연되면 정말 아이를 영영 찾지 못할지도 몰라. 하지만...'

"신고해서 뭐라고 해..."

그제야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술김에 생각 없이 저지른 행동이 후회스러웠고 말도 안 되는 일로 아이를 영영 잃어버릴 상황에 처한 것도 억울했다.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될 것도 소스라칠 만큼 무서웠다.

'이런 일이 알려지고도 과연 내가 엄마로 살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이미 그녀에게 혀를 차며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남은 두 아이는 경멸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고 남편은 그녀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아이들을 이끌고 떠났다. 뒤쫓으려는 그녀를 사람들이 막아섰다. 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성난 군중 뒤로 멀어져 가는 뒷모습은 마치...


문자 메시지


지이이이잉!


스마트폰의 진동이 그녀를 가혹한 상상 속에서 끄집어냈다. 그녀는 퉁퉁 붓고 빨갛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급히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잠금화면 상단에는 문자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엽서 모양의 아이콘이 표시되어 있었다. '지금 시점에 도착한 문자 메시지가 평범한 것일 리 없어.' 내용을 확인하고픈 마음과 메시지를 삭제하고 싶은 충동이 충돌하며 그녀의 손끝에 망설임이 걸렸다. 하지만 현재의 절박함과 미래에 닥칠 상황에 대한 궁금증이 혼재된 그녀의 눈길은 이미 무의식적으로 문자 메시지의 첫 줄을 읽어 들이고 있었다.

오늘로부터 1년 전 고객께서 요청하셨던 아이 납치건은 완료 처리되었습니다. 신청자가 많아 오랜 시간이 소요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첨부파일을 확인하시고 두 번째 페이지의 계약자 준수사항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준수사항을 어길 시 아이는 영원히 고객의 품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는 계약에 의거 만 18세 생일날 집으로 복귀할 것입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첨부파일이 표시된 링크를 열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계약서의 PDF 파일이었다. 계약서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화면 맨 아래쪽에 나타난 신청일이 눈에 들어왔다. 2020년 9월 23일. 그녀는 스마트폰을 조작해 다시 이전 화면으로 돌아갔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지만 경찰에 신고할 경우 계약서의 사본은 수사 담당부서와 남편 분께 전달될 것입니다. 다른 목격자의 신고는 본사에서 직접 처리할 테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입단속만 철저히 하신다면 고객님께서 저희에게 요청하신 내용은 영원히 비밀로 남을 것입니다. 아이 걱정은 접어두세요. 계약서에 명시된 것처럼 아이는 최상의 양육환경에서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커리큘럼에 따라 최고의 스승에게서 교육받을 예정입니다.

지나치게 정중한 말투가 거슬렸다. 그들은 마치 상대방의 패를 훤히 꿰뚫고 있는 도박사처럼 능글거리며 웃음 짓고 있었다. 잘근잘근 씹은 입술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나왔지만 그녀는 아픔조차 느끼지 못했다. '내 상황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냐.' 자정이 얼마 남지 않은 신데렐라처럼 짙어지는 절망에 갈증이 치솟는 느낌이었다. 메시지의 마지막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있었다.

주위가 훤히 드러난 장소를 택한 것은 아이의 납치 증거를 남기기 위한 목적입니다. 놀라셨겠지만 의뢰인께 사전 통보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진정으로 아이를 납치당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셔야 했거든요. 이제 양육에 대한 부담은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편한 여생을 즐기며 그동안 갖지 못했던 개인 시간이나 여가활동도 즐기시고요. 단절되었던 커리어를 이어나가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기타 문의사항이 있으실 경우 아래 번호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몇 차례 깊은숨을 내쉬었다. 결심을 굳힌 듯 굳은 표정으로 번호를 입력한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차례 신호음이 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말소리가 채 이어지기도 전에 그녀는 스스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무슨 말이건 들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통화가 끝나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것만 같았다. 알 수 없는 한기에 몸서리치던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발작적으로 던져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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