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화
* 2편에서 이어집니다.
계산
그녀는 벽을 의지해 몸을 일으킨 뒤 화장대 안쪽을 뒤적거렸다. 라벨이 없는 손바닥 크기의 절반가량 되는 플라스틱 용기를 열어 하얀 캡슐 형태의 알약 한 알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이게 최선일지도 몰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보잘것없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아니.' 이상한 건 미치도록 많았다. '양부모가 멀쩡히 살아있는 아이를 데려다가 비용도 받지 않고 최상의 환경에서 교육해 줄 이유가 없어.' "아이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 게 분명해."
"실종신고를 한다고 해도 과연 그들로부터 아이를 되찾을 수 있을까?" '오히려 파렴치한 엄마라는 오명만 뒤집어쓰고 아이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닐까?'
'나만 함구하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어.' 치열한 계산의 결괏값이 윤곽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약속
적막으로 잠긴 마룻바닥이 거친 진동음을 토해냈다. 남편의 전화였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손이 진동으로 가볍게 떨렸다. 마른침이 입속을 짧게 맴돌다 목 넘김과 함께 사라졌다. 퍼석한 입천장의 질감이 도드라졌다. 부재중 전화는 벌써 다섯 통 째였다. '남편에게 어떤 연락이라도 간 걸까?' 그녀는 남편의 전화를 받지 않기로 했던 애초의 결정을 번복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몇 차례 울리기도 전에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미안해. 핸드폰을 다른 데 둬서 진동 오는 걸 몰랐어. 웬일로 전화를 다했어? 자기 회사에서는 전화 잘 안 하잖아."
"나 오늘 빨리 들어간다고. 같이 밖에서 저녁 먹자고 전화했지. 애들 3시면 집에 오지? 비슷하게 도착할 것 같으니까 준비하고 기다려줘."
"..."
그녀의 눈동자가 사방으로 흔들렸다.
"여보? 듣고 있어? 오늘 전화가 이상한가... 여보, 여보!"
그녀는 놓친 스마트폰을 떨리는 손으로 다시 집어 들었다.
"듣고 있어. 그런데 나 오늘 약속이 있어서."
"약속? 매일 집에만 있던 사람이 웬일로 약속을 다 잡았어? 누구 만나기로 했는데?"
"그냥 동네 아줌마. 말해도 자긴 몰라."
"그래? 그런데 목소리에 왜 힘이 없어? 어디 아픈 건 아니고?"
"피곤해서 그래. 막내는 내가 데리고 나갈게. 애들 둘 데리고 저녁 먹고 와."
"정말 괜찮겠어? 약속 취소하면 안 돼? 중요한 약속이야? 오래 안 걸리면 끝나고 같이 가도 되고."
"아냐. 난 괜찮으니까 자기랑 애들만 다녀와."
"맛있는 거 먹으려고 했는데. 나중에 후회해도 무르기 없기다?"
"알았어. 나 바쁘니까 일단 끊어."
일순간 세상이 핑 도는 것 같았다. 다급히 정수기로 가서 물을 마셨다. 절반 넘게 쏟았지만 그녀는 옷이 젖는 것도 몰랐다. 당장 아이를 찾지 못하면 남편이 알게 될 것이 뻔했다. 대책이 필요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