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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Feb 22. 2024

규칙 속에서의 자유

소설

  모두들 화가 난 것 같아

  눈도 짙고 하늘도 뿌옇고

  그 미친개는 내가 처리해 줄게

  너는 김치 만두를 쪄

  아, 라면도 하나 끓이면 좋겠어




  18. 규칙 속에서의 자유     


  비는 눈비로 바뀌었고 새벽 2시부터는 대설주의보가 발효됐다. 잠에서 깼을 때 시간이 가늠되지 않을 만큼 사방이 어두웠다. 창문을 열자, 이슬 맺힌 바람이 안으로 훅 불어왔다.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나는 난간에 쌓인 눈을 손가락으로 밀어보았다. 눈은 손이 닿은 공간을 저항 없이 내어주었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눈의 감촉은 바나나우유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눈은 덩치가 불어날수록 더디 낙하한다. 함박눈은 바람을 타고 오르내렸다. 윈드서핑을 하려면 바람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바람의 방향을 읽고 돛을 움직여 속도를 높여야 한다. 일단 바람을 잡고 나면 윈드서핑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 인간의 노력은 바람을 적절히 가두는, 그 시점까지다. 어쩌면 눈도 비슷할지 모른다. 빗방울보다 눈이 천천히 떨어지는 건 눈이 가진 공간 덕분이다. 그 공간이 바람을 탈 수 있게 해 준다. 바람은 눈을 만나 속도를 늦춘다. 둘은 그렇게 더 오래 하늘을 난다.      


  눈의 궤적은 규칙성이 없다. 물론 이것은 거짓이다. 눈을 바라보면 그 자유분방함에 감탄하지만 그 속에도 분명 규칙은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눈을 돌린다. 마치 사랑하는 이 앞에서 딴청 부리는 것처럼. 자유와 규칙은 서로 대척점에 있다. 학교에서는 내게 규칙 속에서 자유를 찾으라고 가르쳤다. 규칙 속에서의 자유. 이제는 자유가 노력의 산물임을 안다. 눈도 분명 애쓰는 것일 테다. 자신의 생을 촌각이나마 연장하기 위해서. 자연에게 눈과 물과 수증기는 같다. 눈은 만질 수 있고 물은 마실 수 있고 수증기는 하늘을 날 수 있지만 그들은 모두 동일한 분자 구조를 가진 하나의 사물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사실이 불편하게 들린다. 이유는 모른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어쩌면 단순한 나는 내가 그토록 단순한 삶의 연속임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눈을 바라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사소한 것에 관심이 간다. 허기진 채로 걸을 때 만두 솥에 눈길이 가는 것처럼. 축축한 온기를 머금은 공기와 뜨끈하고 얼큰한 김치만두의 상관관계가 급격히 높아지는 경험은 이성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산물이다. 그저 그렇길 바라게 되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 그러니 나는 또 눈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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