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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Mar 08. 2024

밤을 빛내는 것은 달빛만은 아닌 모양이다

소설

  모자는 손을 흔들며 걸어갔다

  우리는 아주 천천히 멀어졌고

  흔들리는 손끝이 해를 따라 기울었다



  

  28. 밤을 빛내는 것은 달빛만은 아닌 모양이다    


  퇴근 무렵이었다. 주차장으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나는 마른 그릇을 정리하면서 차에서 내리는 두 남자를 곁눈으로 바라보았다. 두 남자의 머리 위로 저녁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저무는 해는 평소보다 크고 찬란했다. 나는 손을 구부려 눈두덩 위에 얹었다. 손님이 드문 하루였다. 늦은 손님도 반갑게 느껴질 만큼.      


  바람이 한차례 거칠게 불었고 황토색 재킷을 걸친 남자(황재)가 카운터로 다가와 유자차 두 잔을 주문했다. 곱슬머리에 호리호리한 몸매의 남자(곱추)는 황재가 계산을 마치고 창가 테이블에 앉은 후에도 전화기를 귀에 댄 채 담배를 물고 문 앞에 서 있었다. 곱추의 대화는 거칠었다. 바람에 가끔 문이 달그락거렸고, 대화는 선명했다가 흐릿해졌다. 회유와 협박의 경계쯤에 놓인 어조였다. 곱슬은 담배꽁초를 발로 짓이긴 후 카페로 들어왔다. 문이 열리며 불쑥 담배 냄새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나는 바닥에 깔린 유자청을 숟가락으로 긁었다. 간신히 한 잔 분량을 담고 새로 한 병을 열어 나머지를 채웠다. 빈 병에는 뜨거운 물을 부어 남은 찌꺼기를 녹였다. 황재에게 유자차 두 잔을 내주고 나니 하늘이 짙은 바다색으로 변했다. 해는 길 건너 세차장 천막 아래로 숨었다. 곱추가 거칠게 전화를 끊으며 욕을 했다. 휴대전화가 바닥에 탁 소리 내며 떨어졌고 황재가 주워 곱추의 손에 쥐어주었다. 곱추가 다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공손했다. 황재가 내게 카페 주소를 물었고 곱추가 전화 속 인물에게 전했다. 나는 꺼두었던 가스난로를 다시 켰다. 울타리 조명이 하얗게 빛났고 도로를 오르내리는 자동차들은 눈을 떴다. 밤을 빛내는 것은 달빛만은 아닌 모양이다.      


  3월이 흐드러지듯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활달해졌고 동시에 초췌해졌다. 겨우내 정체되었던 일들이 궤도에 오르며 사람들은 바빠졌다. 서둘러 아우트라인을 잡으려는 이와 최대한 후일로 미뤘다 하려는 이가 옥신각신했다. 누군가는 그 속에서 힘들어했고 누군가는 화를 냈으며 누군가는 실망을 숨긴 채 몸과 마음을 움츠렸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착각과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관계들 속에서 산발적으로 싹을 틔웠다. 누군가는 그런 활기를 기꺼워했고 누군가는 대책 없는 불안을 느꼈다.      


  카페에서 밤을 마주하는 순간이 좋았다. 저녁 바람을 맞으며 밤길을 걸을 때처럼 마음이 서늘하고 추웠다. 외로움과는 달랐다. 어둠 내린 시간이 지친 마음을 환기했다. 마상의 카페에서 연락이 왔다. 마상도 마녀도 아닌 젊고 쾌활한 목소리를 가진 남자였다. 그는 내게 주문한 원두가 준비되었는지 물었다. 퍼즐을 맞추듯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서로에게 확인하며 각자의 고용주에 대한 한탄을 마쳤다. 아내에게서 걸려온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는 사이 곱추와 황재는 새롭게 등장한 인물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큰 갈등은 없어 보였다. 그들은 서로에게만큼은 괜찮은 사람인 걸까. 나는 퇴근이 늦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에게 잠시 날카로웠고 아내는 목소리에 담긴 예기를 낮췄다. 아내에게도 나는 괜찮은 남편이었을까. 피로가 몰려오는 시간. 이제 마지막 시동을 걸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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