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전우형 Apr 05. 2024

잃어버린 물건들

소설

  42. 잃어버린 물건들     


  바람에 문이 벌컥 하고 닫혔다. 오전 내내 강풍이 불었다. 해는 나지 않고 종일 희뿌연 구름만 오갔다. 바람이 세서인지 구름도 빨랐다. 지나는 차들처럼 그들은 나를 지나치기만 했다. 세차를 맡겨둔 아저씨가 한 사람 카페로 들어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총 3잔을 주문하고 2잔은 이따 자기가 갈 때 포장해 달라고 했다. 그는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여러 사람과 통화를 했다. 사업 이야기도 하고 정치 이야기도 했다. 부동산이 폭락한 게 대통령 때문이라고도 했다가 요즘 정치판을 보면 검사와 판사의 대결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말도 했다. 지난 주일은 부활절이었고 나는 그에게도 부활란을 나누어주었다. 교회 다니시나 봐요? 네. 나는 말끝을 흐리며 애매하게 웃었다.      


  자주 들러 커피를 사 가는 아주머니가 있다. 얼굴이 곱고 눈이 선하다. 잠시 얘기를 나누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자기도 목사님께 커피를 배운 적이 있다고, 그래서 케냐, 만델링, 따라주, 시다모, 예가체프 같은 원두 이름도 알게 되었다고. 요 근처 어디라고 했는데 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은 아니었다. 그 아주머니에게는 내가 그렇게 물었었다. 교회 다니시나 봐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교회는 안 다녀요. 교회 다니시면 반값 할인해 드리는데. 아주머니는 싱긋 웃으며 정가 그대로 계산하고 갔다. 나는 아주머니 손에 계란 두 알을 쥐어드렸다. 교회를 다닐 것 같은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고 커피값을 깎아주고 싶은 사람들은 정가를 다 지불하고 간다.      


  벌레가 하나둘 꼬이기 시작했다. 꽃이 벌레를 부르는 모양이다. 장미허브를 만져보면 사과 향이 난다. 애플 허브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다. 손 끝에 남은 향이 사라질 때까지 코에 대고 있었다. 그러다 완전히 사라지면 다시 장미 허브를 만졌다. 실은 내가 가학 성향이었던가. 고민할 틈도 없이 향기에 빠져들었다. 고양이 다섯 마리를 주워다 보살핀 적이 있었다. 작년 5월 31일이었다. 한 달 조금 넘게 눈도 뜨지 못하는 녀석들을 데려다 젖병을 물렸다. 기운을 차린 새끼 고양이들은 한 걸음씩 떼기 시작하더니 이내 훨훨 날아다녔다. 구석진 곳에 자기만의 화장실을 만들었고 먼저부터 살고 있던 식물들에게 횡포를 부렸다. 그때 물어뜯기고 파해쳐져 뿌리만 남은 식물들이 꽤 있었다. 고 녀석들만 뭐라 할 게 아니었네. 나는 장미허브 잎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그래도 향이 좋아 몇 번을 더 만졌다.      


  간신히 해가 났다가 사라졌다. 울타리 그림자가 기울었고 바람이 살짝 잦아들었다. 화분들을 내놓을지 말지 고민됐다. 지난번에 나비난을 밖에 내어두었다가 거센 바람에 잎이 구부러진 적이 있었다. 아픔을 잘 극복해 자구 셋이 예쁘게 자리 잡긴 했지만 잎이 접힌 자국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하얀 난꽃은 하루 사이에도 피고 졌다. 꽃이 수줍음이 많은가 보다 하고 중얼거렸더니 그냥 수명이 짧은 거예요, 하고 뒤에서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3월 들어 그런 일이 많았다. 목소리에 두리번거리면 고요한 공간만 마주하게 되는 일이. 무섭거나 하진 않았지만 괜히 카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러다 비질을 시작했고 잃어버린 물건들을 찾았다. 세차장 카드가 든 카드 지갑, 20대 여자 얼굴이 프린트된 교원 자격증, 꼬깃꼬깃한 오천 원 지폐, 유효기간이 만료된 여권, 노랗게 숨 죽어 떨어진 이파리. 일주일 동안 나무 쟁반에 담아 두었지만 찾으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파리는 책갈피 대신 꽂아두었고 여권은 버렸다. 오천 원은 간식을 사서 손님들과 나누었고 교원 자격증은 왠지 여자 얼굴이 낯익어 내 지갑에 넣어 두었다. 오영진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어디서 들어보았을까, 한참을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떠오르는 인물은 없었다. 세차장 카드 잔액은 2천 원이었다. 만원을 충전했더니 잔액이 만삼천 원이 되었다. 스노 폼 3천 원, 고압 세차 4천 원, 하부 세차 2천 원을 썼더니 4천 원이 남았다. 나는 4천 원 남은 세차 카드를 다시 그 자리에 놓아두었다. 누군가 이걸 발견하길 기대하며. 그나저나 얼굴이 그려진 부활란은 누가 발견할까. 총 3개를 그려두었는데 아직 공짜 커피에 당첨됐다고 내민 사람이 없었다. 여기 손님들은 죄다 똥손들인가. 나는 구운 계란 하나를 탁자에 탁 두드리고 굴렸다. 바삭 소리가 나며 껍질에 잔주름처럼 금이 갔다. 오후 2시 40분. 아침을 먹고 와도 허기가 질 시간이었다. 나는 라면에 물을 부었다. 

이전 11화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