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부터 비가 내렸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세상을 덮은 건 하얗고 투명한 비의 단상. 시분초 단위로 쪼개진 꿈의 조각들. 기억의 주소와 이름. 누군가에겐 심장이고 누군가에겐 비명일 고통의 순간들. 수없이 자신을 터트리며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꿈의 조각들이 아침부터 내내 머리를 두드렸다. 기억해 내라고. 기억해 내라고. 기억하라고. 기억하라고. 네게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모든 것들을. 멀어지는 동시에 관통하듯 네 속으로 침습하는 모든 빗방울들을. 너도 찰나의 자유를 원하지 않았니. 그 끝이 꿈일지 고통일지 환희일지 아니면 거품일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잖아? 멀어지는 것. 오로지 멀어지는 것. 너를 잃어버리는 것. 너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너는 사랑을 논할 자격이 없어. 머리를 두드리는 생각들. 해석 불가능의 기억들.
사흘동안 비가 내렸다. 비는 비로써 자신의 소명을 다할 뿐이지만 끝내 창과 창틀과 차가운 쇠의 감촉과 피뢰침과 안테나와 지붕과 돌돌돌 굴러가는, 360도 전방위를 고르게 훑으며 돌아가는 환기구 속에도 비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동그랗게 고인 채로. 묻어 있다. 그것이 비의 기억이라면. 비의 꿈이고 비의 전생이고 비의 언어라면. 내가 창에 쓰는 글씨를 너는 읽을 수 있겠지. 누군가를 보낸가는 건 참 어려운 일이구나. 너도 나처럼 미련이 남은 거니.
아침을 달리는 발자국 소리. 젖은 도로 위를 구르는 자동차들의 울음소리. 끼익 하고 문이 열린다. 문은 평소보다 더 아프게 열린다. 문틈에 낀 습기가 자신을 뭉그러트리며 마지막 비명을 지른다. 아침을 여는 것도 어쩌면 꿈의 마지막을 비트는 일. 꿈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입구를 걸어 잠그는 일. 너에 대한 이야기를 덮어두는 일. 그것은 비처럼 자유낙하해 자신을 죽이는 일. 거울처럼 나를 비추는 창가에 서서 도르르 볼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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