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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Oct 31. 2024

시월의 마지막 날

마지막이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느새 길어진 손톱의 하얀 부분을 들여다보며 나는 아, 거추장스러워,라고 생각했다. 손톱이 자란다는 건 살아있다는 것. 그렇다면 나는 살아있는 한 자꾸만 신체 범위 확장을 시도하는 흰 살 손톱을 잘라내어야 하겠지. 왜냐면 나는 삶의 범위를 확장하고 싶지 않으므로.


10월은 달리 말해 시월. 시의 계절일 수도, 시기와 질투의 계절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시,라는 글자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12로 나눠 이름 붙인 열두 개의 숫자 중 열 번째 구간이라는 원래의 뜻보다도 다른 뜻으로만 자꾸 읽힌다. (어쩌면 그렇게 읽고 싶은 걸지도.)


시월의 마지막 날을 어떻게든 비틀어 읽으려 애쓰며 나는 캐러멜 하나를 까서 입에 넣는다. 그러다 불현듯 들이닥친 손님(애써 찾아온 손님에게 들이닥쳤다니, 그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겠지만)을 맞으며 미처 떨어지지 않은 캐러멜 조각을 혀를 살살 움직여 이에서 뗀다. 발음이 망고젤리를 입에 문 것처럼 퍼석하다. 그는 휴대전화를 보고 나는 커피를 내린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가 내려오는 속도로 시월은 가고 있다.


언젠가부터 이런 류의 대화를 자주 하게 되는데, 시월은 내게로 온 적이 없다. 그러므로 시월이 가고 있다는 말도 실은 시월 입장에서는 불편한 말인데. 시월은 애초부터 가만히 갈길 가고 있었고, 나는 창밖으로 지나치는 자동차들 보듯이 시월의 행보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갑자기 은행잎이 녹두빛으로, 개나리빛으로 물들고 길가에 낙엽이 밟히며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평소 들여다보지 않던 길바닥을 자꾸만 힐끔거리다가, 문득 해가 남아있을 시간에 어스름이 지고, 밟혀 으깨진 은행열매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세로 가로로 매만지며 킁킁거리다가, 너 잘 만났다 이리 와봐 하는 식으로 시월의 안장에 슬그머니 올라타는 내가, 시월의 입장에서는 불청객일만도 한데. 재밌는 것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시월은 아니, 모음을 살짝 고쳐, 세월은 속 좁은 인간의 말장난이나 시기질투, 혹은 그동안 관심조차 없다가 갑자기 자연의 정령사라도 된 듯 떨어지는 잎사귀 하나하나에도 감정이입을 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생명체에게 일말의 거슬림조차도 느끼지 않는다. 마치 손톱처럼. 누군가는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제 갈길을 간다. 그러므로 시월은 내게 온 적이 없다. 내가 시월에게 불현듯 이끌렸을 뿐이지.


내가 달을 보고 싶다, 고 말했을 때 한 지인은 달은 이미 너를 보고 있을걸?이라고 말했다. 불공평했다. 나는 그를 보고 있지 않은데 그만 나를 보는 것은. 달토끼의 운명이란 말인가. 예전의 어느 기사에서 본 적이 있는데 우리는 달의 한쪽면밖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달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같아서라는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옆사람 의식하며 아는 척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는데. 알만한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 아니겠어, 하며. 하지만 내가 달의 한쪽면만 보고 사는 것과 나는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데 달만 나를 보고 있는 건 다른 문제지. 이를테면 이건 정보 격차가 너무 큰 거잖아. 그때 어이없다는 듯 내뱉은 지(구)인의 말. 달은 너 따위 보고 싶어 하지 않을걸? 그러자 나는 모든 원한이 해소되는 것을 느끼며 어느새 달이 불쌍해지기까지 했다. 세상에. 꼴 보기 싫은 인간을 매 순간 보고 사는 건 일개미로 사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일이야. 더군다나 달은 그놈의 공전주긴지 자전주긴지 하는 것 때문에 고개를 돌리지도 못한다면서. 미안하다 달아.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게. 어차피 보고 살 거, 조금이라도 이쁜 얼굴이면 낫잖니. 그러니 시월이나 캐러멜 조각도 마찬가지. 어차피 지나쳐야 할 계절이라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때 숨을 거두자는 것. 나이 들고 미각도 시들해지면 지금의 끈적한 단맛도 느끼지 못할 테니. 감각은 정보처리이고, 정보처리에는 품이 드니까. 사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막막해질수록 우리 몸은 필수라 여기는 영역을 점차 좁혀나가겠지. 나는 내가 삶의 범위를 확장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잃고 싶지 않거든. 내가 좋아하는 것. 물론 그건 밝힐 수 없지. 지나가던 시월이 시기질투에 빠지면 안 되니까. 하지만 언제쯤 달처럼 너를 매일 보며 살 수 있을까. 나는 하지 않아도 되는 설명을 굳이 하는 지병을 가진 사람인데, 그래서 별얘기도 아닌 별얘기를 굳이 늘어놓았고, 우주 어딘가에서 묵묵히 자신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가진 모든 것들을 태워 빛을 내는 별을 보면서, 별은 의도와는 상관없이 누군가에게는 별자리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길잡이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 된다며. 매번 틀리는 이름에 대해서 이야기했지. 접힌 책의 한 면을 보며 묘한 상상에 빠져들다가도 불현듯 혼자 서운해져서 그 좋은 날들 뒤로하고 죽으러 가기도 했고. 담을 수 없는 자연에 대해 푸념하기도 했지. 소유할 수 없는 것들로만 가득 채워진 일상을 한탄하면서 말이야. 그래서였을까. 어느새 시월의 마지막이 된 건.


시월의 첫날, 시월은 내게 황동규 시인의 시월을 선물해 주었지. 이제 시월이 끝나가고 있을 때 시월은 Barry Manilow의 When October Goes를 들려주었고. 나는 미니 전동 드라이버를 찾지 못하면서도 배터리를 채우는 법을 알게 되었고, 시월의 이름은 알지 못해도 시월과 걷던 거리와 그 옆에 핀 들꽃은 알아볼 수 있게 되었지. 결국 들꽃의 이름은 또 까먹었지만. 그렇게 알음알음 잊어가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면.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라면. 시월은 또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고 제갈길 가고 있을 거야.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갑옷을 입은 사람처럼. 혹은 상처받을 채비를 마친 채 선고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러니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시월아. 잘 가렴. 너는 내게 온 적 없지만 나는 너를 놓아주련다. 이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마음을 이해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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