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의 끝

에세이

by 작가 전우형

우리는 고요히 경계에 걸터앉아 있다. 앞을 향해 손을 흔든다. 흔드는 손은 인사가 되고, 내민 손은 악수가 된다. 서로의 어느 지점도 침범하지 않은 채로 각자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기도의 손을 모은다.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길. 너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 되길. 너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되고, 너의 웃음을 바라보는 일이 나의 기쁨이 되길. 너의 손을 잡을 때마다 내가 얼마나 차가운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길.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알 수 있다면 그 밤은 너와의 긴 대화로 채워지길. 고단했던 마음, 상처 주었던 말, 단정 짓던 순간들. 마지막 밤의 길목에 모두 내려두고 감사와 사랑만을 남겨 기차에 오르길. 우리가 그럴 수 있다면, 서로를 헐뜯거나 상처 입히면서까지 이루어야 할 일은 그 무엇도 없었다는 걸. 이전부터. 이후로도. 마지막 밤도. 새해도. 우리는 경계에 걸터앉아 있을 테지. 서로와 서로의 것을 소중히 여기며. 밀어냄도 흩어짐도 없이. 더 위하거나 덜 위하는 것 없이. 그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마음 하나로. 씨앗을 서로의 손에 쥐어주었을 때와 같이.


마지막 밤이다. 굳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쓴다. 인생의 마지막 날에 마지막이라는 말을 쓸 사람이 있을까. 인생의 마지막 같은 건 알 수 없으니까. 알지도 못하는 날에 마지막이라는 수식을 붙일 이유도 여유도 없다. 피하고 싶은 말이다. 마지막이란 말은. 시야 밖에서 소리 없이 날아든 공에 맞을 때처럼 아찔하겠지. 하지만 오늘은 2024년의 마지막 밤. 혹은 2024년 12월의 마지막 밤이다. 이건 예정되어 있으니까 이름 붙여두고 기다릴 수 있다. 잘 가라는 인사도 전할 수 있고. 진짜 마지막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슬픔이 거짓인 것처럼. 아픔이 고통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은 애원하지 않고 믿음은 믿음을 배반하기도 하니까. 인생이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 찬 이유는 마지막이 아닌 날을 마지막처럼 살아서다. 혹은 마지막 날을 마지막처럼 살지 못해서거나. 이 혼란을 그대로 두고 싶은 밤. 그런 마음으로 보내는 마지막 밤. 겁내지 않고 툭, 발걸음을 내딛는다.


해가 바뀌면 새로운 일이 생길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음악을 듣고,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새로운 책을 읽고, 새로운 마음으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무언가를 향한 희망과 열망. 씨앗을 손에 움켜쥔 것처럼. 무수한 열꽃이 피고. 움켜쥔 씨앗은 어둡고 축축하고 아늑한 땅의 품에 고이 심어주어야 한다. 자애와 베풂이 깃든 땅으로. 그곳에서 자신의 시간만큼, 꼭 그만큼을 살아내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두터이 쌓인 땅의 허물을 뚫고 올라와야 한다. 해가 바뀔 때도 여지없이 밤은 찾아든다. 고요한 물살처럼 어느새 다가와 곁을 맴돈다. 밤을 맞이하는 마음은 해를 맞이하는 마음과 같다.


마지막 대화의 끝에 나는 눈물로 소년에게 사죄할 것이다. 건넬 수 없었던 말은 여전히 건네지 못한 채로. 소년은 내게 손을 내민다. 흐느낌 끝에 평범한 인사를 건넨다. 잘 지냈느냐고. 나도 잘 지냈다고. 그리고 뭉개어진 언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전한다. 한없이 미안했고 그보다 훨씬 더 고마웠다고. 네가 있어 나도 살아갈 수 있었다고. 너의 안녕을 바란다면서도 끊임없이 너를 위험에 빠트렸던 나를 용서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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