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의 힘을 빌어
어느덧, 이라는 말이 무색한 3월이다. 어느 사이인지도 모르는 동안에. 하지만 매우 긴 겨울을 거쳐 3월은 가까스로 우리 곁에 앉았다. 계절은 손님이다. 시간도 마찬가지고.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잠시다, 잠시. 그 잠시를 인간은 때로는 길다고 하고, 때로는 짧다고 한다. 들쭉날쭉한 감각을 가다듬을 겨를도 없이, 우리는 무언가를 보내고 또 받아들인다. 혹은 잡아당기고, 놓친다. 마음처럼 되는 일은 없다. 그것을 선명한 글씨로 계절의 귀틀에 새겨놓은 듯하다. 틀 속을 거닐지만 그 속에서의 자유를 꿈꾼다. 땅을 딛고 서 해와 달과 하늘을, 별과 그 너머의 우주를 바라보듯이. 바라보는 것에는 한계가 없다. 상상도 마찬가지. 꿈은 꿈꾸는 자에게만 현실로 자리 잡는다. 인식을 바탕으로 빚어지는 것이 현실이라면, 무엇을 인식하기로 선택하고 결정하는가에 따라 그의 현실은 달라질 테니까. 깊고 깊은 밤. 동트지 않는 새벽. 그러므로 2월은 넘어서고 싶지 않은 경계였고 그 속에 영원히 머물고 싶지만 '손'이라는 단어의 뜻이 그렇듯, 지나가다 잠시 들른 사람의 품은 일시적이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싫었고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서, 슬펐다.
차분히 걸음을 옮긴다. 뒤이은 발걸음이 일직선이 되도록. 길의 가운데를 골라 디딘다. 시간의 중심을 걷는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들쭉날쭉하지 않은 균일한 시간을 보낸다. 어느 하나의 순간만 지나치게 무겁지 않도록. 덜어내거나 더하는 작업을 뒤늦게나마 반복한다. 지나치게 소홀했던, 무가치하게 보냈던,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 순간들을 펼쳐 획을 하나하나 다시 그린다. 무수히 반복된 순간들을 합친다. 중요한 순간 하나를 남긴다. 잊힌 장면을 살리고 절제되지 못한 부분을 지운다. 기억을 조각해 매끄럽게 다듬고 날을 세우고 예리하고 꼿꼿하게 새긴다. 2월의 폭설은 지나치게 인상적이었다. 2월의 기억을 온통 설원으로만 덮어버릴 만큼. 눈 덮인 장면으로 오역된 맑은 날들을 하나하나 발굴해 바로잡는다. 거대한 함성 속에서 우는 아이를 찾아내듯이. 환호 속에 입 가린 여인의 한숨을 짚어내듯이. 2월의 울음과 2월의 한숨을. 너의 울음과 너의 한숨을 이윽고 발견한다. 너의 웃음과 너의 활기만을 기억하던 나의 미련함을 3월의 프롤로그에 새긴다.
영원한 것은 없다던 아침과, 그러나 영원히 저물 것 같던 붉은 능선을 두 장의 사진에 담는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을 달리던 심정을 한 자 한 자 말간 유리창에 써본다. 그것은 허공을 유영하는 구름 같기도 하고,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던 백사장의 글씨 같기도 하다. 어떤 낱말을 써두었던가. 어떤 것도 쓸 수 없을 때 나는, 다른 길로 빠져들었다. 손을 내저어도 흩어지지 않는 답답함을 헤매다 결국 네게로 향하곤 했다. 꿈을 꿀 수 있는 곳으로. 땅을 디딘 채 닿을 수 없는 하늘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구원을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거라 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네가 주기를 기다릴 밖에. 결국 3월이 내게 다다랐듯이, 언제고 물씬 느껴지는 봄기운처럼 이내 이어질 첫정을 채워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