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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은 Sep 16. 2020

두고 갈 게 따로 있지.

두고 갈 게 따로 있지

두고 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왔다.

앗! 따갑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토록 따갑다니.

그와 함께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한 시선이었다. 

그는 그동안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두고 왔다.

그가 돌아왔다.

그는 나에게 줄 요거트볼을 두고 왔다고 했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내가 그와 유일하게 입맛을 공유하던 건 그뿐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를 끌어안았다.


두고 왔다.

그가 두고 온 건 요거트볼뿐만이 아니었다.

연인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

나는 그에게 뭘 그렇게 빛을 졌길래

나를 이토록 방치하는 걸까.

그는 오랜 여행 끝에 무엇을 두고 온 걸까.


두고 왔다.

정말로 두고 왔다.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던 네가 처음 먹고 한참을 볼을 조여가며 마시던

밀크티 티백도 두고 왔다.

자꾸만 잊혀 집까지 오는 것도 휴대폰 어플에 

저장되어 있던 위치를 확인하고는 겨우 올 수 있었다.

너한테 뭐라 말해야 할까.


둬야 할까?

오랜 관계 끝에 질질 끌려다니는 것도

마음과 몸과 시간을 쏟는 것도 나일지도 모른다는 친구들의 말에

한 번도 동의한 적 없었지만

그의 애정 없고 힘없는 목소리에 진심을 묻는 게 의미가 있을까.


두고 왔다,

정말로,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이 없어서

더는 없어서, 아무것도 너에게 해줄 수 없어서

두고

오지 못했다.


두고 갔다.

반지도,

요거트볼도

밀크티 티백도

마음도

나도

우리도,

이제 정말 날 두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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