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갈 게 따로 있지
두고 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왔다.
앗! 따갑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토록 따갑다니.
그와 함께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한 시선이었다.
그는 그동안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두고 왔다.
그가 돌아왔다.
그는 나에게 줄 요거트볼을 두고 왔다고 했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내가 그와 유일하게 입맛을 공유하던 건 그뿐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를 끌어안았다.
두고 왔다.
그가 두고 온 건 요거트볼뿐만이 아니었다.
연인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
나는 그에게 뭘 그렇게 빛을 졌길래
나를 이토록 방치하는 걸까.
그는 오랜 여행 끝에 무엇을 두고 온 걸까.
두고 왔다.
정말로 두고 왔다.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던 네가 처음 먹고 한참을 볼을 조여가며 마시던
밀크티 티백도 두고 왔다.
자꾸만 잊혀 집까지 오는 것도 휴대폰 어플에
저장되어 있던 위치를 확인하고는 겨우 올 수 있었다.
너한테 뭐라 말해야 할까.
둬야 할까?
오랜 관계 끝에 질질 끌려다니는 것도
마음과 몸과 시간을 쏟는 것도 나일지도 모른다는 친구들의 말에
한 번도 동의한 적 없었지만
그의 애정 없고 힘없는 목소리에 진심을 묻는 게 의미가 있을까.
두고 왔다,
정말로,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이 없어서
더는 없어서, 아무것도 너에게 해줄 수 없어서
두고
오지 못했다.
두고 갔다.
반지도,
요거트볼도
밀크티 티백도
마음도
나도
우리도,
이제 정말 날 두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