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배배 꼬인 상사의 급발진 에피소드,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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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B 사무장과의 밤샘 비행이 시작됐습니다. 그날따라 날씨는 좋지 않았고 비행기는 계속 흔들렸습니다. 기내식 제공을 하다가도, 스낵 서비스를 하다가도, 좌석벨트 표시등은 계속 켜졌다 꺼졌다 반복되었습니다. 모든 서비스가 늦어졌습니다. B사무장의 신경은 급격히 예민해졌습니다.
"하... 포크가 아니라, 코크 달라고! coke!"
"앞치마가 구겨졌잖아! 상의도 제대로 집어넣어! 혓바닥 내밀고 있는 것 같잖아, 이게 뭐야? "
그의 말투, 표정, 눈빛, 한숨이 모든 승무원들의 심장 뛰는 속도를 결정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모든 서비스를 마치고 갤리로 복귀했을 때, B사무장의 분위기는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 갤리 커튼 끝까지 쳐.
(*갤리:비행기의 주방이자 승무원들의 업무 공간)
내 말이 안 들려? 내 말이 안 들리냐고! 그럼 물어봐! 왜 안 물어보는 거야?
승객 응대는 왜 그렇게 늦어지는 거야? 컴플레인 들어오면 누가 책임질 거야!
손발이 왜 이렇게 안 맞아? 최악이야! 됐어! 그냥 나 혼자 일하는 게 낫겠어! 다 니들 마음대로 해!"
꽁꽁 얼어붙은 분위기에 싸늘해졌습니다.
B사무장은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각자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다들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할 뿐이었지요.
저 역시도 스트레스가 최고치에 달했습니다. 손 끝이 차가워지고 다리도 떨렸습니다. 뒷골이 당기기도 하고 눈앞의 사물이 뒤집혀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침착하게,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① 내 마음 진정 시키기
심호흡을 여러 번 하며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습니다. B사무장과 잠깐이라도 분리될 수 있도록 화장실로 향했지요. '나는 왜 이럴까.. 내가 그때 이러지 말아야 했어.' 하며 내 탓을 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남 탓을 하려고 했습니다. '아니, 왜 저러는 거야? 별일도 아니구만.. 역시 이상한 사람이야.'하고 혼잣말을 작게 내뱉었습니다. 쉽게 주눅 드는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남 탓을 해야 침착하고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② 시간을 두기
B사무장처럼 쉽게 '욱'하는 사람들은 화가 난 순간, 감정 주체가 안됩니다. 옆에서 아무리 사과를 해도 절대 받아주지 않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본인의 감정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쿨해집니다. 그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저 역시도 B사무장이 급발진하며 화를 냈을 때는 어떠한 변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만 한 후, 기다렸지요. 스스로 화를 삭힐 시간 1시간 정도를 '내가' 그에게 주었습니다.
③ 사과에 대한 마인드셋
서먹해진 관계와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는 '사과'가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상대의 폭언과 인격 모독으로 인해 도저히 용서하고 싶지 않다면 그때는 하지 마세요. (별개로, 내 잘못이 있다면 면피하지 말고 사과해야 합니다.)
저는 B사무장에게 사과했는데요. 지적받은 제 잘못에 대해서는 저도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억울한 부분도 있었지만) 'B사무장보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임을 스스로 느끼고 싶어서' 사과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로, 언제까지 저자세를 취해야 할지 고민도 되었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두 다리 뻗고 마음 편하게 자기 위해서 딱 한 번만 사과해 보자. 그랬는데도 안 받아주고 더 상처 주는 말을 한다면, 나도 사과하지 말자. 회사 내 평판? 인사평가? 될 대로 돼라.'
④ 담백한 사과
저는 작은 간식을 B사무장에게 건넸습니다.
"사무장님, 이거라도 받아주세요.. 죄송합니다.
저로 인해 일이 힘들어지셨으니 제가 조금이라도 사무장님 마음 풀어드리고 싶어요."
B사무장은 말했습니다.
"됐어~ 너무 마음 쓰지 마~ 사실 나는 다른 손님 때문에 예민해진 거였어. 나도 나쁘게 얘기해서 미안해."
감정의 원인이 다른 곳에 있었다니.. 허탈했습니다.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는 게 명확히 드러났으니까요.
그래도 B사무장에게도 사과를 받으니 마음이 놓였고, '오늘은 두 발 뻗고 자겠다.' 싶었습니다.
⑤ 개선된 태도 어필
사과로 인해 관계가 회복된 이후에는 이전과 달라졌음을 어필합니다.
'당신의 피드백을 이제는 꼭 반영한다.'는 제스처를 온몸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소심한 태도를 지적받았다면, 씩씩하고 대범한 태도를 보이려 노력합니다.
잦은 실수를 지적받았다면, 메모하는 모습을 보이며 꼼꼼하게 일하려는 노력을 보여줍니다.
한번 화를 낸 직후에는 사람이 한층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 그때, 자신감을 갖고 달라진 태도를 보여보세요.
저 역시도 B사무장이 원하는 대로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고, B사무장도 흡족해하며 더 미안해했습니다.
마침내 B사무장과 웃으면서 비행기에서 내릴 때,
"이번에 고생했다."라고 격려하며 작별 인사를 할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이 사람도 무섭지 않아. 오늘의 퀘스트도 깼다. 레벨 업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