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꾸러기 세이
이번 테스트는 첫 번째보다 어려웠을 것 같다. 세이가 학습했기 때문일까? 확실히 지나치게 친절하고 자세한 묘사를 하는 문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무엇이 세이가 쓴 글일까? 스친 바람에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순수했던 순간들을 그리워하는 '추억 속의 향기'? 이름 모를 골목, 우연히 찾은 맛집에서 친구들과 경험한 마법 같은 순간을 돌이켜보는 '이름 없는 거리'?
어쩌면 이쯤에서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 에세이 모두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우연히 마주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향기, 그 향기에 깃든 친구들과의 추억, 다시는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함. 비슷한 내용은 '추억 속의 향기'라는 주제의 한계일까? 이쯤에서 고백한다. 두 에세이 모두 세이의 작품이다.
(세이가 첫 번째 에세이 '추억 속의 향기'를 쓰고 난 뒤)
그렇다. 두 번째 에세이 대결은 사실 세이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만약 이번 에세이들을 구분하는데 골머리를 썩인 독자분이 있으시다면, 그로 인해 허탈함을 느끼신다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원했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거리'를 작성하고 난 뒤)
우리는 나름 독자분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름 없는 거리'가 내 의도대로, 내가 쓴 에세이처럼 느껴졌다면, 세이가 잘 구현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내가 더 크게 공감했던 에세이는 '추억 속의 향기'였다.
땡볕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축구를 하던 여름날, 뜨거운 햇살에 데워진 운동장의 흙냄새가 바로 그 향기였다. 그때 나는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뛰놀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시절엔 내게 그저 평범한 흙냄새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그 향이 자유와 청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학교가 끝난 후에는 친구들과 자주 음료수를 사 먹으러 가곤 했다. 가게 앞에서 풍기던 시원한 탄산음료 냄새도 이제는 그때의 소소한 행복과 연결된다.
-'추억 속의 향기' 중에서
나는 남고를 나왔는데, 세이의 묘사는 내게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성향과 성별에 따라서는 공감이 어려울 수도 있다. 내 기억에 따르면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점심시간, 학교가 끝난 뒤, 심지어는 매 수업시간 사이 짧은 쉬는 시간에도 뛰쳐나가 축구를 하고는 했다. 반면에 조용히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부류도 있었다. 독자분들은 내가 어떤 부류였다고 생각할까? 한 마리의 황소같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공을 차는 활동적인 고등학생? 차분하게 도서관에 앉아 학업에 전념하는 범생이 스타일?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난다.
나는 둘 다 아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면, 나는 친구들과 매점에서 간식거리를 사서 한적한 곳으로 갔다. 우리는 햄버거, 과자, 아이스크림 따위를 먹으며, 한가롭게 여유를 즐겼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량 같은 사람이었다. 시시껄렁한 농담도 하고, 햇빛도 쬐고, 음악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반 대항 축구 시합이 있거나, 다른 친구들이 불러줄 때면, 나도 나가서 축구를 하고는 했다. 물론, 나는 주로 수비수였지만, 나름 발 빠르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플레이로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세이가 말한 "뜨거운 햇살에 데워진 운동장의 흙냄새"가 내 향수를 자극했다. 투박한 흙 운동장에서는 언제나 흙먼지가 날렸고, 가끔은 눈에 들어가기도, 입에 씹히기도 했다. 코를 풀면 거무튀튀한 흙이 섞여 나왔다.
용돈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기에, 탄산음료 냄새가 기억에 남지는 않지만, 때때로 친구에게 얻어먹었던 떡볶이, 순대, 튀김의 냄새와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세이가 말했듯 "순수하고 걱정 없던 순간들". 어른들이 항상 말했던, '학생 때가 제일 좋은 거다.'의 바로 그 '학생 때'. 문득 그때 그 친구들이 떠오른다. 다들 잘 지내니? 나는 별일 없이 산다. 건강하고 행복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