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먹는다는 건
'이름 없는 거리'를 읽을 때는 종로나 을지로의 거리들이 생각났다. 서울 토박이로 30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내가 모르는 동네, 거리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는 했다. 지금은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마치 개미굴처럼 낯선 골목을 빠져나가면 또 다른 골목이 나왔다. 커다란 냄비에서 익어가는 순대의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을 타고 얼굴을 적시기도, 창문 너머로 들리는 지글지글 전 부치는 소리가 입맛을 돋우기도 했다.
종로3가역 5번 출구, 낙원악기상가 맞은편에는 국밥집이 있었다(지금도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허름해 보이는 외관에도 불구하고, 식당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식당 문 옆, 처마 밑에서는 정겨운 모습의 할머니가 큰 솥 앞을 지키고 계셨다. 구수하고 칼칼한 국밥 냄새에 이끌려, 친구들과 나는 홀린듯이 안으로 향했다. 몇십 년의 세월을 머금은 듯한 원목 테이블,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온기가 남아있는 의자들, 투박한 식기와 그릇들, 그 자체로 완성되는 빈티지한 인테리어들. 무엇보다도, 오래전 시간에 머물러 있는 국밥 가격 2,000원.
주문도 필요 없었다. 할머니는 휘휘 저으시던 우거지국을 사람 수만큼 그릇에 담아, 흰 공깃밥, 새콤달콤한 깍두기와 함께 내어 주셨다. 푹 고운 된장 국물과 부드러운 우거지, 코끝을 간질이는 후추 냄새. 군침이 돌았다. 우리는 말없이,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그 유산을 몸으로 느꼈다. 5명이 와서 만 원을 냈는데, 돈을 내기 전까지도 맞게 계산을 했는지 의심이 가는 가격이었다. 이상하게도 10년이 지나가는 그 추억이, 가끔은 생각난다.
식후에 찾아보니 꽤 유명한 곳이었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우리가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찾아간 곳이 그 식당이었다면, 그만큼의 여운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낯선 곳을 헤매다 출출해졌을 때쯤, 우연찮게 맡게 된 냄새를 따라 들어선 오래된 음식점. 가난했던 대학생들이었지만 낄낄대며 뭉쳐 다니면 걱정도 없었던 우리들. 어쩌면 음식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미각과 후각이 아닌,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세이의 글을 읽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이는 그런 기분을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