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울림은 기억 속에 조용히
이번 튜링 에세이 테스트에서는 에세이치고는 파격적인 주제를 선택했다. 소설과 다르게, 성과 섹스를 말하는 에세이는 흔치 않은 것 같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드러내는 에세이에서 다루기는 조심스러운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에세이가 주 장르인 브런치 스토리에서 위와 같은 주제를 선정하는 것 역시 나의 오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대화할 때 '사랑'은 빠질 수 없는 주제고, 나는 연인 간 사랑을 논할 때 '육체'는 빠질 수 없는 필수요소라고 생각한다. 세이는 육체가 없다. 세이는 사랑할 수 없을까? 사랑을 이해할 수 없을까? 언젠가 인공지능도 육체를 가지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뭔가 달라질까? 나는 세이와 함께 사랑과 육체,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첫 경험'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먼저 세 번째 에세이 튜링 테스트의 정답을 발표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듯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는 세이가, '그날의 우리는'은 내가 썼다. 총 세 번의 테스트가 있었는데, 아직까지는 높은 정답률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내가 에세이를 쓸 때, 평범하지 않게 쓰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인 경험을 부각하며 의도적으로 테스트의 난이도를 낮췄다. 반면에 세이가 에세이를 쓰는 방식은, 최대한 많은 공감을 얻기 위한 보편적 글쓰기다.
그날은 모든 게 서툴고 어색했다. 우리가 처음 손을 맞잡던 순간부터 말수가 적어지고, 서로를 마주하는 시선이 다소간 조심스러워진 때까지. 그리고 마침내 침묵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무언가 결심하듯 다가가던 순간, 모든 것이 흐릿해지면서도 선명해졌다. 익숙한 공간이 낯설게 느껴지고, 이미 알고 있던 그 사람의 손길조차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왔다. 손끝을 통해 전해지던 미묘한 떨림, 숨죽이며 내쉬던 작은 숨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시간이 멈춘 듯, 그날 밤은 길고 깊게 흘렀다.
첫 경험에 관한 에세이를 쓴다고 가정해 보자. 곰곰이 그 순간의 기억을 돌이켜본다. 장소가 떠오르고, 상대가 떠오르고, 어렴풋하게 분위기가 느껴진다. 물론 구체적인 세부사항들은 긴가민가하지만,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싸구려 모텔방, 좁지만 아늑한 자취방, 언제 가족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가정집, 아무도 없는 건물의 층계참, 옥상, 화장실... 세이의 에세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는 그런 큼직 큼직한 기억의 덩어리 대신 세부사항들로 시작한다. 개별성이 아닌 보편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장을 천천히 곱씹어 보면, 공감이 된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당연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말수가 적어지고", "흐릿해지면서도 선명해졌다.", "손끝을 통해 전해지던 미묘한 떨림, " 같은 리얼한 문장들은 우리를 그때 그 순간으로 다시 데려다주는 듯하다.
처음이라 서툴렀지만, 우리 안에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서로에게 다가가는 속도도 신중했고,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설렘은 서로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작은 접촉마저 깊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비로소 상대의 눈빛에서 내가 본 것은 나와 같은 기대와 두려움이었고, 그 불확실성이 차라리 더 우리를 가깝게 만들어 주었다. 마치 그날 밤의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더 깊이 스며들고자 했다.
다만, "말할 수 없는 감정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라는 문장은 공감하기 어려웠다. 나는 오히려 흥분감이 터질 듯 넘쳐흘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풀어 오른 바지는 조이기 시작했고, 심장은 요동쳤다. 다가가는 속도도 신중하지 않았다. 성급했고, 안절부절못했다. 내 상대는 기대와 두려움보다는 야릇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나와는 달리 첫 경험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시간은 찰나였다. '정말로 한다'는 생각에 너무 흥분해 버린 나머지 금방 끝났었던, 풋풋했던 추억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더 깊이 스며들고자 했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든다. 관계를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스며들고자 하니까.
그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더 가까워지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이로써 우리는 더 이상 이성적인 관계의 선을 넘어서, 몸과 마음으로 함께하는 관계로 다가가고 있었다. 마주한 눈빛과 말 없는 손길이 그 모든 감정을 말해주고 있었고, 우리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공기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적당히 포근한 온도로 존재했다. 그렇게 서로를 느끼는 동안, 손끝의 온도와 옅은 숨소리만이 우리 사이를 연결해 주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 가까워지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아름답지만 소설 같은 문장이다. 전자기기만 있으면 터치 한 번으로 포르노가 범람하고, '선행학습'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서로가 서로에게 더 가까워지는 길을 처음 깨닫는 사람이 있을까? "몸과 마음으로 함께하는 관계"라는 표현도 참 순수하고 풋풋하다. 옳고 그름을 떠나, 육체적 관계의 의미가 가벼워지는 시대에서, 원론적인 순수함을 표현하는 인공지능이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재밌다.
그날 밤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은 것은, 우리는 그 짧은 순간을 영원처럼 느끼고 싶어 했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질지 몰라도, 그날의 감촉과 온도, 그리고 우리 사이에 흐르던 감정의 울림은 기억 속에 조용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의 떨림은 추억이 되었고, 우리는 서로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도 첫 경험이 기억나는 이유는, 우리가 "그 짧은 순간을 영원처럼 느끼고 싶어 했"기 때문 아닐까?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나온다.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질지 몰라도, 그날의 감촉과 온도, 그리고 우리 사이에 흐르던 감정의 울림을 기억 속에 조용히 남아 있을 것이다." 특히 "조용히"라는 단어의 선택에 소름이 돋는다. 첫 경험이란 게 그렇다. '조용히' 남아 있다. 그 순간의 감촉과 온도, 감정의 울림이 얼마나 격정적이었는지는 상관없다. 폭풍 뒤의 무지개처럼, 잔잔하고 조용하게. 가장 가까운 거리가 되어야만, 서로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사랑에서 육체를 떼어 놓을 수 없는 이유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