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생활에서 스스로 대견해 하기.
한국에서는 사소하고 별것 아니었던 일들이, 타지생활에서는 큰 문제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어느 날 창문을 열다가 갑자기 창틀이 퍽 하고 떨어졌다. 한국에서야 '고치면 되지' 하고 생각이 될테지만, 이곳에서 나는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걸 어떻게 설명한담.'
아파트 앱을 켜고, 영어로 문제를 설명하고, 인도네시아 엔지니어가 오면 나의 짧은 인도네시아어로 엔지니어에게 다시 한번 설명을 하고 잘 고쳐달라고 말을 한다. 그가 어떻다고 설명한들 나는 반정도 혹은 대애충 알아듣고 그 상황을 종료한다
이곳에 처음 살았을 때는 긴장의 끈을 놓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잦은 에피소드가 생기고 빨리 이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매일밤 아이들 방학에 방문할 한국 갈 날만 고대하면서!
하지만 이제 나는 이곳에 어느 정도 짬밥이 생긴 묵은지가 되었고, 교민들에게도 정보를 줄 수 있는 레벨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작고 사소한 일들이 생겨도 나의 마음세팅이 처음 왔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짐을 느낀다.
어느 날 아침 아이들 학교 교장이과 면담이 있는데 매일 시간을 잘 맞추어 오던 기사가 오지 않아서 급하게 택시를 타고 가야 했다. 교장을 만난다고 옷을 차려입고 짐도 있었고 아이들 등교도 같이 해야 하는 상황이라 늦고 싶지 않았다. 짜증이 올라오려 했지만 얼른 택시앱을 켜고 택시를 탄다. 그리고 이렇게 상황을 전환한다.
"좋은 택시기사가 배정됐다. 다행이다. 길을 잘 알아서 다행이다."
물론 아침에 기사가 오지 않아서 속이 상했지만 나에게 이제 이 나라에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음에 스스로 대견해한다.
그리고 르바란연휴에 휴가를 떠난, 정말 나와 잘 맞았던 가정부가 휴가 간지 이틀 만에 내 집으로 다시 일하러 올 수 없겠다고 메시지를 남기고 연락을 끊었다. 꼭 남자친구한테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받은 기분으로 몇 시간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정도로 나의 감정과 기분이 무너졌다. 이곳에 막 왔을 때 나였더라면 새 가정부를 구할 때까지 머리를 싸매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에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우리 집에 있을 동안 고마운 점을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실로 떠난 가정부는 그랬다.
'그래도 지금 알려줘서 다행이야. 르바란 거의 다 끝날 때쯤 알려줬으면 어땠겠어'
'내 친구가 이곳에 왔을 때 너무 잘해줬으니 그걸로 되었다.'
'내가 이전에 가정부들 때문에 너무 상처받고 힘들었는데, 3개월 동안 너무 잘해줘서 나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으니 그녀의 몫은 그것으로 되었다.'
이렇게 되뇌어도 쉽게 내 마음이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결 나았다. 그리고 잘 안 가던 Gym을 예약하고 러닝머신에서 달렸다. 땀을 내고 시원하게 샤워를 한다.
해외에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은 많다. 정말 인생을 엑셀로 계획을 세울 만큼 철두철미한 내 친구는 이곳에 살면서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 한 문장이면 얼마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마음처럼 해결되지 않는지 알겠는가?
처음 타지생활을 시작할 때는 사소한 문제들이 그곳에 적응하는데 큰 걸림돌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다 잘 해결이 되고, 이렇게 친인척 가족 없이 잘 해결해서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나 자신을 볼 때면 꽤 '대견'하다. 한국에 있을 때 나와는 다르게 꽤나 내가 '어른'에 가까운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