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살아보니 더 그래보고 싶어졌다.
구남친(현남편)과 나는 검소한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했다. 스몰웨딩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고, 나와 구남친은 그러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 한번 상담이나 받자고 찾아간 웨딩플래너에게 이런저런 것을 권유받다 보니 어쩌다(?) 계약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준비해서 식장에 입장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시작부터 나는 사회의 흐름을 편승하는 것으로 결혼을 시작했다.
신혼생활을 즐긴 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점점 많아졌다. 남편은 아이가 공부에 관심을 보이고 잘한다면 대치동으로 이사를 해서 아이의 교육을 밀어주고 싶어 했다. 나는 남편과 생각과는 정 반대였다. 앞으로 '대학'의 의미가 나 때와는 달라질 것 같고,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심어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면서, 둥이들 유치원 학비에 사교육을 한 개씩만 시켰는데 벌써 한 달에 아이 앞으로 교육비가 백단위 이상이 깨졌다. 앞으로 초등학교를 가면 그 지출 규모는 더 커질 것 같았다. 나만 중심 잡으며 사교육을 시켜야 하는 환경에 휘둘리지 말아야지 했지만 육아선배들은 다 하나같이 말했다.
"나도 너처럼 생각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 다들 하고 있는데 내 아이만 안 하고 있는 게 어디 쉽니. 나도 영유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그렇게 보내는 이유가 있더라."
내가 살고 싶은 삶의 형태는 분명 있었는데 그렇게 살아갈 수 없었다. 다들 가던 길로 가야 어렵지 않아 보였고, 내가 선택 삶의 형태는 왜?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할까 싶은 것 같았다.
그런 고민이 왔다 갔다 할 때쯤 남편을 따라 주재원을 오게 됐다. 인도네시아에 살다 보니 자연히 '사교육'이란 단어로부터 멀어졌다. 스마트기기를 들고 다니는 아이들도 거의 없고, 매일 밖으로 나와 뛰노는 아이들만 있다 보니 내가 딱 원하던 육아환경이 됐다. 학원이랄 것도 크게 없고, 그 퀄리티 또한 한국의 것과 비교해 보면 그저 그래서 굳이 내 아이의 시간을 때우기 위해 뭐라도 가르쳐 보자고 보내지 않았다.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 아이의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자연히 고민되었다. 가능하다면 나는 아이의 홈스쿨링도 지지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이 홈스쿨링이란 단어를 꺼냈을 때 주변반응은 다 하나 같았다.
"홈스쿨링, 그거 너 그거 할 수 있겠어? 아이들과 하루종일 네가 같이 있어야 해"
내가 살고 싶은 주거형태도 더 이상 아파트가 아닌 다른 선택하고 싶었다. 인생에서 내가 컨트롤 가능한 영역과, 컨트롤 안 되는 영역 두 가지로 구분했을 때 분명히 주거환경은 내가 컨트롤 가능한 범주에 속했지만 남편과 내가 가장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었다. 현재 남편의 생활을 보면 거의 그의 인생이 없는 것처럼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밤낮없이 평일과 주말 없이, 아니라 공휴일이 있든말든 그의 시간이 없다. 앞으로 남편의 삶이 이러한 형태로 흘러갈 것인가? 생각해 보면 좀 더 인간적인 삶을 남편과 살고 싶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 너 돈은 좀 모아둔 거 있어?"
나의 생각에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반응과 질문을 보면, '내가 너무 생각이 없나?' 싶다.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아이들을 경쟁과 대학입시를 향한 교육시스템에 넣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아파트가 아닌 다른 주거환경에서 살고 싶은데 너무 고생길이 훤한 길을 선택하는 걸까?
4년간의 해외살이 후...
마흔쯤 시작되는 나의 한국행.
그때도 나는 사회가 정해둔 삶의 틀 안으로 다시 들어가야 할까?
(그 안으로 안 들어갈 용기가 나에게 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