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 살면서 셋째를 출산하신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런 영향 때문일까? 혹은 아이들이 크다 보니 몸이 편해졌나?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그런 걸까? 나는 둥이들을 출산 후 다시는 내 생애 아이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나와 남편은 셋째 이야기 주고받곤 한다.
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물리적 환경이 바뀐 것뿐인데 왜 이곳에서 나는 셋째 생각이 나는가? 물론 아이들이 이제 내손을 떠나 혼자 스스로 해내는 일들이 생기고, 둘이서 잘 놀면서 엄마를 찾는 일이 적다 보니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과연 내가 셋째 생각이 났을까? 싶다. 주재원 엄마들 사이에서도 동남아에서는 셋째가 잘 생기니 조심하란(?)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한다. 왜? 동남아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 동남아는 달라요.
한국에서는 아이들에게 '하지 마' '뛰지 마' '만지지 마' '조용히 해' ' 조심해'라는 말을 끊이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나는 이 단어들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는 아이가 실수해도, 맨발로 놀이터를 뛰어다녀도, 조금 큰소리로 말해도 어느 누구도 아이의 행동에 눈치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곳을 가던 내 아이가 환영받는 느낌을 준다. 무언가 하나 더 주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내 아이에게 주는 '시선'과 분위기에서 그런 것을 느낀다.
인도네시아에 막 도착해서 놀이터에 놀러 갔을 때, 아이들이 맨발로 노는 것을 보고 놀란적이 있다.
'어머 저렇게 놀아도 된다고? 아니 저렇게 맨발로 놀다가 발 다치면 어쩌려고'
나는 그 당시 둥이들 발이 다칠까 봐 신발을 못 벗게 했다. 아이들도 맨발로 밟는 땅의 촉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은? 맨발로 뛰어다니고 나무를 올라간다. 여전히 아이들이 풀밭에 벌레에 물리지는 않을까, 어디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나와달리, 아이들은 너무나 자유롭게 맨발로 학교 풀밭이며 흙 위를 걷는다. 아이의 그런 자유로움이 혹은 자연스러움이 나의 속을 뻥하고 뚫어준다.
어느 어른이 와서 '아이 발 다치겠다. 신발 신겨요' 라던지 맨발로 뛰는 아이를 '유별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음식점에서 조금 시끄러워도 매서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 없고, 궁금한 것을 물어도 귀찮아하는 어른이 없다. 아이가 무언가 요청하면 인상을 찌푸린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노키즈존? 은 그 단어의 의미조차 생경하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며 공공장소에 갈 때마다 부모로 느꼈던 감정은 '미안함'이었다. 내 아이가 식당에서 조금 큰소리로 말할 때가 있고 울기도 했다. 그건 이아이가 이 공간에 무엇을 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7세가 된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공공장소에서 궁금해서 만져보기도(박물관, 미술관 유물 아니고 그냥 백화점에서) 하려 할 때마다 그것을 제지하다 보면 나가서 밥을 먹는 것이 돈 쓰고 고생한 느낌이었다.
아이의 실수를 잘못으로 여기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불편한 시선으로 보지 않는 이곳에서 육아하는 나의 마음은 편안하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한국에서는 뭔지 모를 시선, 음식점이나 카페를 가면 이 공간의 흐름을 바꿀 것 같은 주인공이 내가 될 것 같은 느낌과 시선이 없어서 부모로서 마음이 편하다.
마음의 여유로 하는 육아.
한국에 있을 때는 나도 돈이 있어야 아이를 한 명 더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결혼 전에 돈이 아닌 마음의 여유로 아이를 낳고 키우자고 말했던 나의 입을 다그치기도 했다. 실제로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젊은 시절 내가 멋모르고 했던 소리구나... 하면서 말이다.
유치원에서 초등, 중등, 고등학교 등 교육비 관련만 고민이 커져갔다. 외벌이의 삶에서 아이들에게 앞으로 들 사교육비를 생각하니 내가 이렇게 가만히 집에서 살림만 하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한국에서 셋째는 진짜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지지 않는 이상 낳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 동남아시아에서 지내다 보니 셋째 생각이 난다?
이곳에서 느껴보니, 내가 아이를 하나 더 낳아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든 것은 '내 아이가 아이답게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분위기' 였던 거 같다. 계속 돈에만 포커스를 맞춰서 출산정책을 펴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그래 돈이 없으면 아이 못 키우지'라고 생각이 굳혀왔던 거 같다.
어느 날은 유튜브에서 한 청년이
"출산은 돈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있으면 중산층이죠"
이라고 말을 하는 인터뷰를 보고 정말 가슴이 쿵 하고 앉았다. 아이를 키우는데 당연히 돈은 든다. 공짜로 키우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육아의 방법이 다르고, 지향하는 삶의 형태가 다양한데 워낙 남의 시선을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조금만 달라도 '유별나다'생각한다. 그리고 조금만 달라도 사회의 정규 규범을 이탈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한국사회의 시선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부모도 그렇게 하게 되는 거 같다.
이곳에서는 내 아이는 아이답게 자라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이곳저곳 다녀도 눈총을 받지 않아도 되어서 이곳에서 육아하는 내 마음은 한결 편하다.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사교육을 하지 않아도 되고, 선행학습을 하지 않아도 되니 아직 초등 저학년인 내 아이들은 누가 무엇을 더 잘하고 덜한지 알지 못한다.
이렇게 해외에 나와서 살아보니 과연 한국의 저출산 정책이 돈 더 줄 테니 아이 하나 더 낳으라고 하는 것이 방향이 맞는가?라는 것에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한 명 낳으면 얼마, 둘째 낳으면 얼마 이렇게는 현재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데 핵심키가 될 수 없다. 내 아이가 아이답게 행복하게 클 수 있는 사회라면, 그런 나라 라면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고민할 부모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