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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미숙 Jun 10. 2020

축령산(祝靈山)

나의 고향 산천


인터넷에 축령산 자연휴양림을 검색해 보면, 축령산은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외방리 280번지에 위치하고 있다고 나온다. 그곳이 바로 나의 산골 고향이다. 호적상 나의 고향 주소가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외방리 산 7번지였다. 동네 이름은 ‘물골안’이다. 검색된 자료를 통하여 축령산의 유래를 살펴보면,     


"축령산은 광주산맥이 가평군에 이르러 명지산과 운악산을 솟구치며 내려오다가 한강을 앞에 두고 형성된 암반이다.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말에 사냥을 왔다가 사냥감을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는데 몰이꾼의 말이 “이 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 산신제(山神祭)를 지내야 한다”라고 하여 산 정상에 올라 제(祭)를 지낸 후 멧돼지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때부터 고사(告祀)를 올린 산이라 하여 “축령산(祝靈山)”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   


라고 쓰여 있다.  

축령산에 잣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잣이 산골마을의 중요한 소출이었다. 잣 따는 철이면 마을 아저씨들이 항고(군용 야전 반합)에 밥을 싸가지고 잣 따러 축령산으로 들어간다. 지게에 발채를 얹어 짊어지고 일렬로 논두렁길을 따라 산으로 향하는 모습은 마치 싸움터로 나가는 전투병과 흡사했다. 우리 집 뒤편 산등성이에서 바라다보면 들판이 펼쳐져 있고, 들판 넘어 뒷개울이 흐른다. 개울 징검다리 건너 축령산 입구까지 대열이 이어 진다. 그 대열 속에 아버지가 끼어 있었다. 아무리 대열이 길어도 나는 아버지를 한눈에 발견할 수 있다. 


어스름 저녁이 되면, 아저씨들은 송진 묻은 잣을 지게 발채에 잔뜩 짊어지고 내려온다. 짊어지고 온 잣은 벌판 제일 큰집 마당에 부려놓는다. 그리고는 잣 따는 다음날을 위해 고단한 몸을 이끌고 각자 집으로 향한다. 


나는, 잣 따는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싸리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목 빼고 기다린다. 싸리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아부지!”하며 얼른 달려 나간다. 아버지는 지게를 작대기로 세우며 반겨주는 딸내미 소리에 “오냐!”라고 화답한다. 나는 아버지를 기다리기보다는 아버지의 지게를 기다렸다. 세워 둔 아버지의 지게를 뒤지면, 영락없이 작업복 속에 숨겨 온, 낫으로 잘 깎인 잣을 발견 한다. 한 알 한 알 뽑아서 깨트려 먹는 햇 잣은 귀한 한철 간식이었다.   


축령산에 대한 유식한 유래에 대하여 어려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 다만 마을 사람들이 신령한 산으로 여겼다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부터는 믿거나 말거나 어머니가 전해 준 이야기다. 내가 갓 돌이 지났을 무렵 마마(천연두)에 걸렸다고 한다. 지금도 손목과 얼굴을 자세히 보면 마마 자리가 남아 있다. 동네 사람들은 아기의 온몸에 붉은 반점과 수포가 덮여 가는 것이 도저히 살 가망이 없다고 했단다. 어머니는 동네에서 용하다는 옥현네 할머니를 찾아가 아기 살릴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단다. 옥현네 할머니가 처방을 내주었다. 그건, 축령산에 가면 ‘두망암’이라는 커다란 바위 밑에 샘이 있으니, 첫새벽에 목욕재계하고 가서 물을 길어다가 머리맡에 놓고 두 손 모아 빌라는 것이었다. 첫새벽에 아낙네 혼자서 산에 올라가 샘물을 길어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밑져야 본전이겠다 싶어 어머니는 옥현네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두망암’으로 올라가서 샘물을 길어 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긁으면 흉터가 남으므로 긁지 못하도록 손발을 꽁꽁 묶어 놓은 아기의 머리맡에 물을 놓고 지극정성으로 빌었다고 한다. 


그런 정성 탓에 나는 약간의 마마 흔적만 남긴 채 살아났다. 살아난 아기는 피부가 뽀얗게 오르기 시작했고 또릿또릿 잘 자라났다는 이야기다. 

지금, 축령산은 나의 기억 속의 원시성을 잃어 낯설지만, 나에게는 보배로운 고향 산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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