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스네스 전망대에서 나를 만나다

(10) 나를 만나고 성찰하는 여행

by 서이담
2E3C29CA-E328-4FEF-89E8-A349016C1739.jpeg 온달스네스 호버산 꼭대기에서 바라본 전경, 더 즐기다 올걸!
여행은 관광이 아니다. ‘수동적인 봄(gazing)’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는 자기 발견의 경험이다.

- 아주 보통의 행복, 최인철, 21세기 북스


생각보다 하루가 길었다. 올레순이라는 항구도시에 갔다가 여유롭게 점심도 저녁도 먹고 다시 온달스네스 시내로 오려고 했었는데 올레순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보낸 터라 8시 즈음 겨우 온달스네스 시내에 도착했다. 온달스네스에는 케이블카가 하나 있었는데(로엔 케이블카) 이미 많이 지쳐있었던 우리는 '꼭 타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는 보통 아이의 컨디션에 맞추는 게 좋기 때문에 아이에게 바통을 넘기기로 했다.


"재민아~ 너 케이블카 타고 산에 올라가고 싶어?"


"응! 탈래"


아이는 생각보다 흔쾌히 케이블카를 타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쳐진 몸을 이끌고 전망대로 올라가기로 했다. 이 날은 구름이 좀 끼어서 전망을 감상하기 그리 좋지 않은 날이었기 때문에 케이블카가 생각보다 한산했다. 올라가는 케이블카 손님으로는 우리 셋밖에는 없었다. 인심 좋은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가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10분 정도 후에 출발할 거니까 들어가 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우리는 케이블카 안으로 들어갔다. 3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는데 어떡하죠?"


"이쪽으로 나와서 저쪽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화장실이 보일 거예요. 아직 시간 있으니 천천히 다녀와요."


이렇게 할아버지의 배려로 케이블카를 무사히 타고 우리는 온달스네스 호븐(hoven) 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은 무척이나 추워서 사진을 찍는 남편은 밖에 있고 나와 아들은 전망대 안으로 들어갔다. 전망대 안에는 작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무척 비쌌다. 그냥 기다리고 있으려고 했는데 남편이 생각보다 오랜 시간 사진을 찍고 있었던 터라 음료를 한 잔 시키고 창가 좋은 자리에 앉아있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카페 매대 앞으로 아이와 함께 갔더니 앞서 온 미국인들이 주문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점원과 시시덕거리면서 편하게 음료와 안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주문을 다 한 뒤, 점원들이 그들을 전망 좋은 식당으로 안내했다. 분명 음료만 주문한 사람은 식당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었는데도 그랬다.


'허 참!'


그런데 내 차례가 되자 점원이 주문을 받지 않고 딴청을 부렸다. 5분 넘게 메뉴판만 보고 있었는데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조용히 기다리던 나는 드디어 입을 뗐다.


"저기~ 우리 이제 주문할 수 있나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지금 음료 만드는 중이잖아요."


금발의 한 직원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심지어 그 직원은 음료를 만들고 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상황을 보고는 나에게로 왔다.


"어떤 걸 시키실래요?'


"코르타도 한 잔이랑 코코아 하나 주세요."


"지금 코코아는 다 떨어졌어요."


"그럼 파인애플 주스 하나 할게요."


이렇게 계산을 하고는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는 커피는 조금 이따가 서빙받기로 하고, 파인애플 주스만 가지고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10분이 넘게 기다렸는데 주문한 커피가 오지를 않았다. 매대를 슬쩍 보니 내 커피가 나와 있는데 서빙을 아무도 해주지 않고 있었다. 내가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아까 그 금발머리 직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동료에게 '나온 커피가 누구 것인지 모르겠다'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주문을 받았던 직원이 또 나서 줬다. 그리고 커피를 내 자리로 가져다주었다.


"고마워요~" 하고 커피를 받아 들었다. 커피는 맛있었지만 마음이 씁쓸했다. 이게 바로 인종차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주문한 미국인들은 나와 똑같은 조건이었는데도 웃는 얼굴로 대하고 심지어 좋은 자리까지 받았는데 나는 내 돈을 내고 먹는 커피까지 이런 경우를 당하면서 마셔야 하다니 하면서 마음이 울적하고 화가 조금 났다. 얼른 남편이 오면 내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남편에게 빨리 오라는 문자를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 이따가 남편이 나타났다.


"우와~밖에 풍경이 말도 못 하게 멋져요! 조금 추운 건 알지만 우리 같이 나가서 사진 찍지 않을래요?"


남편은 상기된 표정으로 나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었기에 남편의 말을 듣고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밖은 쌀쌀하고 바람도 많이 불었지만 그래도 걸을만했다. 20미터 정도를 올라가니 꽤나 멋진 전망이 보였다. 온달스네스는 산맥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높이 올라와 보니 산맥과 그 사이로 난 피오르드가 선명하게 보이는 게 정말 장관이었다. 남편은 이 풍경을 찍고 찍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나도 뒤늦게 기분이 좋아져서 아들과 남편과 함께 가족사진도 찍고, 독사진도 찍었다. 아들은 정상 근처에 무수한 돌탑을 보더니 본인도 돌탑을 쌓고 싶다고 했다. 나도 함께 돌탑을 쌓으면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아까 그 점원 때문에 기분이 나쁜 마음이 찝찝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길을 나서면서 남편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남편은 자신이라도 그런 경우를 당하면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며 동감과 위로를 해주었다. 남편의 위로를 받는데 이런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우린 어찌 보면 같은 풍경을 마주한 거잖아. 그런데 당신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 있었고, 나는 사소한 일 때문에 그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것 같아. 어쩌면 예전에 내가 많이 힘들었던 것도 내 옆의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기보다는, 사소한 일에 감정이 뒤흔들려서 너무 거기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랬다. 분명 내 삶에 좋고 아름다운 것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사소한 것에 너무 내 주의를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행복해지고 더 편안해질 수 있는 기회를 나 스스로 놓쳐버렸다. 그저 흘려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말이다. 노르웨이 여행에서 인종 차별을 느낀다고 생각했던 적보다 현지인들이 너무나 친절해서 고마웠던 적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게 일어난 일에 날을 세워 누릴 것도 누리지 못했다. 여행지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일상에서도 그랬다. 여행지에서 나는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일어난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을 더 기억하기 마련이라고 한다. 나름의 생존본능 때문일 거다. 하지만 나는 이 생존본능을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무디게 만들어보기로 다짐했다. 온달스네스 전망대에서의 일을 꼭 기억하면서. 내 앞에 놓인 절경을 사소한 기분 때문에 망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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