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예상치 못한 휴식
'빈둥빈둥'
이 말이 여행에 어울리던가?
게이랑에르와 송네 피오르로 가는 긴 길을 모두 거쳐온 우리 가족은 플롬(Flåm)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남편이 목표로 하고 있던 내셔널 씨닉 라우트도 다 돌았겠다. 푹 자고 난 우리 가족은 오늘 별다른 계획 없이 주변 마을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빈둥빈둥' 거려보는 것이다.
뭘 할까? 아니 뭘 먹을까?
전 날 느지막이 숙소로 돌아왔기에 식당 문이 다 닫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숙소에서 밥을 해 먹었다. 전 날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이 날은 아침을 밖에서 사 먹어 보기로 했다. 검색을 하다가 어제 지나쳐왔던 아울란드(Aurland)에 위치해있는 베이커리 겸 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플롬은 나름 유명한 관광지라 그런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구글 맵에 많은 후기를 올려놓았었는데, 이 카페에 대한 평도 꽤 괜찮았다. 노르웨이의 아침식사를 잘 보여주는 모습이라나.
도착한 카페는 정말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플롬은 관광지의 느낌이었다면, 아울란드는 좀 더 푸근하고 아기자기한 시골 마을에 가까웠는데 이 카페가 이 동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벽에는 각종 특산물을 파는 코너도 있었고, 한쪽 게시판에는 아울란드에서 할 수 있는 농장체험이나 카약 타기 등 각종 레저 활동이나 공동체 활동에 대한 안내 전단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노르웨이에 사는 사람이라면 너무 유명한 관광지인 플롬보다는 아울란드에서 시간을 보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갓 구운 빵과 잼, 수프로 든든하게 채운 다음 빵 몇 가지를 테이크 아웃했다. 그리고 빵과 짐들을 차에 실어 놓고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피오르드와 인접한 동네라 그런지 곳곳에 관광객들을 싣고 내리는 페리 항구도 있었다. 거기서 아이와 뛰어다니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조금 걷다 보니 관광지스러운 유리공예 기념품 가게가 눈에 띄었다. 슬쩍 안으로 들어가 구경도 하고, 식료품 마트에 들어가 근처 래르달 동네에 유명한 산딸기와 저녁에 먹을 식료품과 요거트도 샀다.
"시간이 너무 남는데?"
원래 오후 5시쯤 플롬에서 산악기차를 타기로 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너무 비었다. 남편이 나서서 표를 2시 것으로 바꿔왔고, 우리는 2시쯤 산악 기차를 타고 뮈르달 역으로 올라갔다가 거기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느지막이 내려왔다.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5시쯤 되었다. 전 날 숙소 주인아주머니께서 가꾸는 텃밭에 심긴 야채들을 얼마든지 먹어도 된다고 알려 주셔서 바구니를 가지고 나갔다. 파(pipe onion이라고 부르시더구먼)와 양배추, 당근 몇 개, 루꼴라를 먹을 만큼만 따서 주방으로 돌아왔다. 이제 오늘 이후에는 에어비앤비가 아니라 호텔에서 묵어야 하기에 남은 식료품들을 오늘 다 해치우기로 했다. 그래서 김치와 현지에서 산 순록 햄을 보글보글 끓여서 부대찌개를 끓였다. 부대찌개가 거의 다 완성되어 갈 즈음 숙소 주인아주머니께서 숙소 점검 차 집을 방문했다.
"오늘 잘 보냈어?"
"네 잘 보냈어요. 플롬에서 기차를 탔는데 나름 재미있었어요."
"응~맞아. 중간에 요정인지 누군지 나와서 공연을 하는데 그게 멋진지 나는 잘 모르겠더라."
"맞아요. 완전 공감. 아! 혹시 김치 수프 좀 먹어보실래요?"
"오~ 좋아. 안 그래도 냄새가 참 좋다고 얘기할 참이었어."
"좋아하셨으면 좋겠네요. 여기요~"
부대찌개를 한 소큼 그릇에 담아 아주머니께 건넸다. 아주머니는 무척 맛이 좋았다며 남편에게 에어비앤비 앱으로 채팅을 보냈다고 한다. 한식이 노르웨이에서도 먹힌다니 역시 하며 기분이 좋았다. 부대찌개는 세계 어디서나 잘 통하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아주머니가 주신 야채들과 사 온 요거트와 꿀을 조금 섞어 샐러드를 만들고, 부대찌개와 가져온 밑반찬들을 펴 두고 우리의 저녁식사가 시작됐다. 야채를 잘 먹지 않던 아들도 꿀 섞인 요거트를 발라서인지 당근을 참 잘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남편이 설거지를 했고, 우리는 다 같이 깨끗하게 씻고 포근한 침대에서 잠을 잤다.
바쁜 일정 속에서 이렇게 편안하게 쉬고 일상처럼 살아갈 수 있는 달콤한 시간이 있어서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