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에서 덕분으로

(14) 아이 덕분에 더욱 풍성해진 여행

by 서이담
FB7A5D4B-3A9E-442D-B187-C99811A51BC3.jpeg 오슬로 중앙역 앞 놀이터

노르웨이에서 여행을 하는 내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보았다. 관광이 아닌 '생활'이나 '레저'를 하는 현지인들에게서 특히 이런 모습이 많이 보였다. 어느 정도 말귀를 알아듣는 나이의 아이들은 스스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부모님과 동행했고, 그보다 나이가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아기띠로 업거나 유모차에 태우거나 자전거 뒤에 싣고 생각보다 자유롭게 여기저기를 다니는 모습을 쉽사리 목격할 수 있었다.


여행기 초입에도 썼던 적이 있지만 여행 전에 우리 부부는 아이와 '함께' 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아이와 함께하는 장거리 비행이라니,

아이와 함께하는 장거리 운전이라니,

아이와 함께하는 장기간 체류라니

(사실은 8일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으로서는 아이와 함께 한 가장 긴 여행이었으므로)

정말 괜찮을까?


걱정을 하고 또 많이 망설였었다. 솔직히 말해 원래 예약했던 핀에어 비행 편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러시아를 관통하는 항로가 막혀 부득이하게 취소되었을 때는 '이렇게 여행을 가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인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모두 다 기우였음을 여행을 시작하고 오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노르웨이에서 깊이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사회에서 아이들을 위한 정책을 아주 세세하고 자연스럽게 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례로 우리 가족이 노르웨이 국립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사실 아이가 지겨워하면 어떡하나 하고 조금 걱정을 했더랬다. 그런데 이게 뭔가. 박물관 안의 크고 작은 각각의 전시실마다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놀잇감이 마련되어 있었다. 놀잇감이 그 전시실 테마에 맞게 꾸며져 있었음은 물론이다.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 조용히 해라 경고문을 붙이는 게 아니었다. 이 장치들은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작품을 즐기기도 하고 어른들에게는 미술품을 감상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41FA0BD6-8A84-4F15-BFC2-7D8E87744D4A.jpeg 전시실 안에서 블럭 놀이를 하고 있는 아들, 저기서 우리는 뭉크의 그림을 보았다.

또한 조식을 먹으러 간 오슬로의 한 호텔에서 아이들을 위한 책자와 색연필을 발견했다. 책자 안에는 색칠놀이나 틀린 그림 찾기 등 간단한 게임들이 들어 있었다. 아이들이 식사 시간을 지겨워하지 않고 잘 즐길 수 있게 만들어진 배려 넘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식을 먹고 나간 오슬로 중앙역 앞에서 어린이 놀이터를 발견했다. 놀이터는 노르웨이 전역에 많았는데 여행을 하고 돌아와 '너만큼 다정한 북유럽(호밀 씨, TERRA)'이라는 책을 보니 북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아이들을 위해 과할 정도로 놀이터를 많이 지었다고 한다. 꼭 필요에 의해서만 지은 것이 아니라 넉넉하게 아이들의 '뛰어놀 권리'를 지켜준다는 점이 정말 부러웠다.


이런 아이들에 대한 배려와 세심함이 여기저기에 뿌리내린 나라에서 여행해서 그런지 몰라도 아이 덕분에 여행이 풍성해졌다. 아이는 수줍은 많은 우리 부부와 다르게 만나는 사람들의 인종과 나이를 불문하고 겁 없이 인사를 하고 애교를 부렸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 특히 어르신들이 우리에게 한 번 더 웃어주고,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한 호텔에서는 아이가 있다고 하니 조금 더 큰 사이즈의 방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주었는데 이런 점들도 아이와 함께 여행해서 이득을 본 점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아이는 아이의 시선으로 여행을 즐겼는데, 우리도 덩달이 여기에 동참하는 영광을 누렸다. 여행에서 아이의 컨디션이 나빠지면 그날 하루가 너무 피곤해진다는 것을 여러 차례의 실전 경험으로 깨달은 우리 부부는 이번 여행 기간 동안 쉴 곳이 나오면 쉬고, 둘러볼 곳이 생기면 무조건 차에서 내려 걷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4시간 정도 걸려서 갈 거리를 6시간이나 7시간이 걸려서 가기도 했지만 말이다. 차에서 내린 아이는 길바닥에 널린 자갈을 차서 웅덩이에 넣어도 보고, 노르웨이 개미를 만나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살펴보기도 하고, 두껍게 쌓인 만년설 위를 걸어보기도 했다. 부부끼리만 갔으면 눈으로만 그것도 휙 하고 스쳐 지났을 풍경을 실제로 만져보고 느껴본 건 우리에게도 뜻깊은 경험이었다.


조금 긴 비행시간만 감안한다면, 아이들과 함께하는 북유럽 여행. 정말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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