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worries

(16) 신뢰로부터 나온 대충대충

by 서이담
6F3E57AE-26E1-478C-B2DF-8C0016162FE9.jpeg 오슬로 시내의 모습, 트램이 참 이뻤다

여행을 거의 다 마치고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로 갔다. 시골스러웠던 지금까지의 풍경과 달리 무려 5층 높이의 빌딩이 나타나는 등 오슬로는 유럽도시의 모습을 우리에게 많이 보여주었다. 물론 우리나라나 홍콩, 상해와 같은 마천루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휑한 1, 2차선 도로가 너무나 익숙해진 여행자들에게 4차선이 넘는 도로가 나타난 이 곳은 굉장히 생경하고 또 번잡하게 느껴졌다.


비겔란 공원에 갔다가 간단히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오는 것 같던 비는 금새 우렁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다음 우리의 행선지는 국립오슬로 박물관이었는데 네비를 잘 못보고 길을 몇 번이나 잘못 든데다 비 때문에 운전도 어려웠던 터라 남편이 많이 예민해졌다. 또 아이는 마침 잠에 들어 있었다. 그리고 오슬로 박물관에 주차장이 따로 없어서 우리는 길가에 주차장에 차를 대어두었다.


"그런데 여기 주차장은 주차기계가 없네?"


"그러게...어떻게 이용을 하라는거지?"


"에잇 일단 가자. 비도 오는데 얼른 들어가자."


남편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박물관도 가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일단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박물관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표를 끊고 다행히 아이가 잠에서 깨어 미술품들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바람에 꽤나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주차한 곳으로 돌아갔다.


"아~ 이거구나!"


다행히 비가 그쳐 시야가 환해졌던 터라 주차할 때 보지 못했던 주차 기계를 찾았다. 그런데 결제를 하려고 이런 저런 버튼을 누르다보니 하나 이상한 게 있었다. 주차를 몇 시간 했는지를 차주가 스스로 입력하는 시스템이었던 거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던 우리는 일단 지금 시간으로 주차를 했다고 하고 머물렀던 시간 만큼을 계산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차에 와보니 영수증같이 생긴 종이가 앞유리와 와이퍼 사이에 끼워져있었다.


SANCTION


노르웨이어가 가득 쓰여진 종이의 내용을 분명히 볼 수는 없었지만 한가지 우리가 확실히 볼 수 있는 건 있었다. 그건 바로 660kr(크로네)라고 쓰여진 부분이었다.


"이거 뭔가 벌금 청구서 같은데?"


급하게 구글 번역앱의 사진 기능을 이용해서 청구서를 살펴보니 우리의 차가 주차등록되어 있지 않다면서 660크로네를 벌금으로 납부를 할 것을 말하는 내용이었다. 주차 방법을 몰랐던 외국인이라면 한번쯤은 겪어볼법한 상황이었다. 어쩐지 렌터카 기어봉 앞쪽에도 오토파킹을 할 때는 요금을 꼭 지불하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는데 바로 이런 상황을 우려해서 그런게 아니었나 싶다.


일단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청구서 아랫쪽에 적혀 있는 주차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확인했고, 벌금 관련된 부서는 내일 오전에서야 통화가 된다고 하여 다음날까지 기다렸다가 직원과 통화를 해서 청구서에 대한 이의제기 신청 메일을 보냈다. 몇 주 뒤에나 이의 제기신청에 대한 답이 오게 되고, 그 후에 벌금이 청구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혹시 노르웨이에 그것도 오슬로에 갈 계획이 있으시다면 주차 방법은 미리 알아두고 가시기를 권해드리고 싶다.


이러한 번거롭고 당황스러운 과정을 거치면서 느낀 게 있다. 한국의 주차시스템은 정말 모든 게 자동화되어 있다. 우선 입구에서부터 자동차 번호를 인식하고 출입 시간을 기록한다. 그리고 나서 출차를 하기 전에 주차비 지불을 마치거나 상점에서 주차 등록을 한 뒤 출차를 할 수가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운전자가 직접 출입 시간을 기록하고, 예상 주차시간을 기록하는 등의 '양심'적인 절차는 찾아볼 수 없다. 기계가 전자적으로 기록한 시간과 번호판의 숫자만 신뢰될 뿐이다.


노르웨이는 한국같은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런 문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동화를 빙자한 철저한 수동 시스템으로 주차가 이뤄지고 있다. 세상에 입차 시간을 스스로 입력하고, 예상 주차시간에 대한 비용을 미리 치른 뒤, 차를 뺄 때 한번 더 출차시간 체크를 해서 최종 정산을 하는 시스템이라니... 물론 가끔 걸리는 차가 있다면 우리처럼 벌금을 내겠지만, 해도 너무 헐렁하고 대충이었다. 이걸로 주차장 운영이 정말 잘 될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고보니 이 곳 노르웨이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면 한국인인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Thank you!" 라고 이야기를 했다. 보통 이에 대한 반사는 "You're welcome"이라고 배웠는데, 노르웨이에서는 교과서에 그 말이 쓰여있지 않았는지 "No worries"라는 말을 더 자주 들었다.


"No worries."


어쩌면 미리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 게 이 사람들의 기본 태도라서 그런 대답을 한 것은 아닐까? 주차요금을 내는 방식도 이렇게 헐겁게 짜여져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 '양심에 맞게, 정도껏, 알아서' 그렇게 나름의 믿음 안에서 여유와 자율성을 갖고 살아가는 게 이 나라 사람들의 특징이 아닐까.


그래도...주차 시스템은 우리나라가 훨씬 낫다. 믿음은 없어도 편리한 기술을 가진 우리나라 좋은나라.

F28CE409-E9B1-4422-A5E5-EAC8BF82A064.jpeg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에서 바라본 오슬로항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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