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내어 나의 변호사 되기
"이게 뭐니? 너 똑바로 일 안 할래?”
몇 년 전 어느 날이었다. 유관부서에서 한 사람이 전화를 걸어서는 같이 하는 일이 나 때문에 낭패를 겪게 되었다며 대뜸 화를 냈다. 화를 낸 일이 이전 담당자에게 막 인계 받은 일이라 내가 정확히 모르기도 했고, 또 하필이면 이 날 하루 종일 큰 행사를 운영하느라 바빠서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 눈에 보이는 일로도 바쁜데 계속 전화가 와서 그 사람의 닦달까지 들으려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던 일을 일단 마무리하고 집에 와 자리에 누웠는데 그 사람의 폭언 때문에 마음속에 화가 치밀어 올라 잠이 오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면서 내일 그 사람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머릿속으로 골똘히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 일찍 와서 우선 그 사람이 염려했던 일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차근차근 그 사람에게 설명이 가능하게끔 자료를 만들었다. 다행히 그 사람이 걱정한 것처럼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냥 용어가 달라서 헷갈렸던 것 같다고 자료와 함께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다행히 그 사람도 내가 이 일에 대해 진지하게 해결을 하려고 하고, 또 문제가 아니라고 하니 마음이 좀 누그러진 것 같았다.
용기 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업무적으로 우려했다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말씀을 조금 더 부드럽게 해주세요. 어제처럼 말씀하시면 같이 일하는 저도 상처받습니다." 사실 그 사람이 나보다 선배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게 처음이었다. 그 사람도 약간 놀라는 눈치였지만 일단 알겠다고 말했다.
놀랍게도 같은 날 비슷한 일로 그 분과 또 부딪쳤다. 당황스러웠다. 이번에는 그 사람이 먼저 나와 얘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드렸다. 내가 바빠 보여서 본인은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나름대로 더 챙겨서 했는데 내가 너무 방어적으로 나오니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머릿속이 하얘져서 지었던 표정을 '왜 대수롭지 않은 걸로 화를 내냐'는 표정으로 오해했다고 했다. 그 사람의 솔직한 말에 나도 그 사람에 대한 오해를 풀고, 좀 더 서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번 경험으로 깨달은 부분이 있다. 만약 내게 어떤 사람이 감정적으로 크게 타격을 주었다면, 그리고 그게 마음에 깊게 남아있다면, 타격을 준 그 사람과 용기 내어 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비록 윗사람이거나 혹은 내가 어려워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이유는 첫 번째, 상대방과 말을 해 봐야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그 배경은 뭔지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 상대방에게 내가 그 경험으로 인해 타격을 받았다는 걸 한 번 짚어주어야 그 사람도 조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나는 간이 작아서 욕까진 못하지만 가끔 한 번쯤은 따끔하게 할 말을 한다. 그래야 나를 지킬 수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용기내야 한다. 강한 사람에게 당하고 끙끙 앓고 있으면 정말 어이없게도 그 억눌렸던 감정이 나보다 약한 사람을 향해 나가게 된다. 나에게 반격하지 못할 대상을 찾고는 그 사람에게 화를 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내 자신이 나에게 화를 냈던 그 사람과 혹은 내게 부당하게 대했던 그 사람과 똑같이 되는 거다. 그러면 결국 천천히 내 자신의 본 모습을 잃게 된다. 화를 낼 사람에게 화를 내야 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전혀 받아주지 않고 나만 옳다며 고집을 부리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겐 어떻게 해야 하냐고? 이런 사람들은 피하는 게 제일 좋다. 이런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했다가는 직장 생활이 너무 피곤해져 버린다. 몇 번 경험했다.
하지만 이런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서는 다행스럽게도 보통의 사람과는 말이 통한다. 그리고 설령 이런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나를 용기 내어 대변하고 지켰던 경험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자산이 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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