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푸의 교훈
“매일이 행복하진 않아. 그렇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곰돌이 푸의 명언이 담긴 책에 있었던 말이다. 매일이 온전히 행복하다고 느낄 수는 없겠지만, 잘 살펴보면 매일의 비슷해 보이는 삶 속에 행복은 늘 한 구석에 자리해 있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일이 바쁘다. 예전에 비해서 확실히 그렇다. 여유가 없어진 것과 동시에 웃음도 많이 잃어버렸고, 짜증도 늘었다. 이런 감정들을 크게 실감하고 있다. 누군가는 우리를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라고 정확히 진단했다. 여러 가지 진행 중인 일들을 팔로 업하고, 새로 생겨나는 일들을 챙기느라 매일이 분주하다. 오늘도 비슷했다. 어제 아주 긴 리스트를 팀원이 챙겨 주었다. 유관부서에서 전해준 일이었는데 나름 열심히 정리를 해서 내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일의 양이 꽤나 많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일보다는 내가 지금 모르고 있고, 알아내야 하는 일들이 훨씬 많았다. 짜증이 확 밀려왔다.
‘이러면 안 되지.’ 하고 마음을 다 잡고는 묵묵히 일을 해나갔다.
점심시간이 됐다.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점심 약속이 있었다. 나랑 함께 일하고 있는 타 부서 분과 친한 동기가 알고 보니 예전에 함께 일하던 동료였고, 타 부서 선배가 주도적으로 점심 자리를 주선해주셔서 셋이 함께 점심을 먹는 약속이었다. 살짝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던 것과 달리 우리들의 점심시간은 무척이나 유쾌했다. 선배님은 같이 일을 하면서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함께 이야기를 하고 보니 굉장히 소탈하고 솔직한 분이셨고, 덕분에 이야기도 잘 통하고 일하는 데 도움도 얻을 수 있었다. 짧게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꽤나 긴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이야기부터, 일, 사람 이야기부터 정말 주제를 막론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던 것 같다. 처음으로 길게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도 막힘이 없고 거리낌이 없었다.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참 드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기다렸다는 듯 일의 연속이었다. 지난주에 너무나도 재밌게 해서 자신감이 넘쳤던 결과물을 팀장에게 가지고 갔다가 퇴짜를 크게 맞았다. 이것도 맘에 안 들고, 저것도 맘에 안 든다고 했다.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했던 일이었는데 피드백이 좋지 않으니 더 크게 실망했다. 얼마 후 다른 회의를 하다가 사람들이 내게 이런저런 것을 물어봤는데, 내가 확인했던 사실이 틀렸다고 회의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나름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했던 것이었는데 다수의 의견이 다르니 굉장히 민망해졌다. 힘든 상황들이 연속으로 벌어졌다. 자리로 돌아와 다른 일을 잡고 있는데 마음이 편치 않음을 느꼈다.
‘아, 쉬어야겠다.’
간식을 챙겨 먹고, 친구에게 답답한 마음을 터놓았다. 친구는 별 일 아니라며, 팀장의 피드백도 주관적인 것이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말라는 위로를 해주었다. 객관적으로 팀장의 의견이 맞는 것 같아 더 자괴감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뭔가 솔직한 마음을 터놓으니 마음이 시원해졌다.
집에 오는 길,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해 봤다.
‘진짜 짜증 났다. 오늘 정말 힘들었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올라왔다.
그러다 문득, ‘아, 오늘 친구랑 선배랑 진짜 즐겁게 점심 먹었었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났다.
힘든 일이 많았던 오늘 즐거운 일 하나는 있었던 셈이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게 일어나는 일들은 내가 통제하거나 막을 수 없지만,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인가는 내가 정할 수 있는 거라고. 그렇기 때문에 매일이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일어난다는 것을 내가 ‘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거라고 말이다. 결국 이런 것들을 더 기억하는 사람이 인생의 승자가 되는 것 아니던가.
곰돌이 푸 이 녀석, 좀 똑똑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