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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Apr 20. 2021

청바지가 잘어울리는 내 딸

11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던 둘째 딸 이야기



나: 할머니, 이모 얘기도 해주세요.


할머니: 너희 이모는 배에서 너무 요란스러워서 아들인 줄 알고 시댁에서 애를 낳기로 했어. 그런데 몸을 풀었는데 (아이를 낳았는데) 딸이었어. 


헉...!


나: 그랬구나. 지금도 씩씩하신데, 뱃속에서도 그랬나 봐요.


할머니: 학창 시절에 너희 이모는 공부를 열심히 안 했어. 그런데 어느 날이 되면 갑자기 책상에 앉아 있어. 그러면 아 쟤가 시험 보는구나 그걸 알아. 그리고 밤을 새 가며 공부를 해, 그러면 좋은 점수를 따. 평소에는 놀기만 하고 공부를 안 해서 내가 “너는 학교 다니는 사람이 맞냐?” 그러곤 했거든. 그런데 계속 성적이 좋으니까 아 너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구나 인정을 했지.


나: 이거 글로 써도 괜찮을까요?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모가 외모도 성격도 할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모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민망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가셨다.


할머니: 너희 이모는 청바지 하나로 대학을 나온 사람이여. 그게 무슨 말이냐면 맨날 남자같이 청바지만 입고 다녔거든. 내가 좀 이쁜 옷도 입고 다니라고 뭐라고 했는데, 그게 제일 편하다고 그러면서 그것만 입고 다녔어.


남자들도 사귀고 그래야 되지 않겠냐고 그랬더니 남자들이 너무 따라다녀서 초크 친다고 그랬어. 


초크 친다는 말이 철벽 친다는 의미인 듯하다. 이모는 내가 보기에도 할머니의 자식 셋 중 가장 예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외모 꾸미기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나 보다.


할머니: 그때 이모한테 남자들이 덤비지를 못했나 봐. 어려서도 너희 이모가 그랬어. 자기는 남녀공학 다니면서 남자들이랑 경쟁할 거라고. 그래서 S대 아니면 K대, Y대 간다고 그랬어. 기어코 거길 들어가더라고. 


삼 남매가 다 대학을 다녔을 그 무렵 교회 사람들이 과외 하나 시키지 않고 자식 셋을 다 좋은 대학교엘 보냈다고 다들 부러워했어.


이모는 4년 동안 학비 400만 원을 꼬박꼬박 대가며 가르치느라고 융자 얻어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지. 나쁜 성적은 아니었는데 거기 애들도 워낙 뛰어난 애들이었으니. 졸업을 해서는 회사에 쉽게 합격을 했더라고. 그러다가 대학원을 간다고 했어. 내가 가르칠 돈 없다고 했었는데도 어떻게 들어가더라고. 그래서 뭐 어떡혀 공부시켜야지.


할머니: 너희 이모가 대학원에 가서는 너희 이모 친구의 엄마가 소개를 해 줘 가지고 이모부를 만나서 결혼했어. 그때가 너희 엄마가 결혼하고 나서 1년인가 2년인가가 채 지나지 않았을 때여. 엄마는 직장 가진 후에 결혼이라도 했지 이모는 직장도 없었는데. 진짜 그때 어떻게 (결혼식 준비를)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모가 시집가는 집엔 이모부가 집안에 아들 하나라고 그 시어머니가 얼마나 대단하게 굴었는지 몰라. 바라는 게 얼마나 많은지 뭣도 해오라 뭣도 해오라 해가지고 내가 아마 살이 몇십 킬로 빠졌을 거야. 사돈이 하도 우리 집을 무시하고 뭐 해오라고 하는 바람에. 해 달라는 거 다는 못해주고 시늉만 내서 겨우 시집을 보냈어. 


할머니: 결혼 후에 시집에서 결혼하고선 왜 직장 다니냐고 그냥 말라고 그래 가지고 직장을 그만뒀지. 그리고 너희 이모부가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했기 때문에 이모가 여기저기 이사 다니고 그랬거든. 


너희 이모부가 제대를 하고 C병원에 근무하게 돼서 지방으로 이사를 가서 살았지. 그 병원이 S대생이 많이 있고 국립이고 그래서 좋다고 글로 가서 있었지. 거기 한 십 년 있었을 거야.


이모와 이모부 결혼식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이모는 꼭 영화배우처럼 보일 정도의 미인이었다. 아마 집안 차이가 있었는데도 결혼을 했던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이모의 미모도 한몫하였으리라 추측해본다.


글을 정리하면서 같은 배 속에서 나온 자식들인데 왜 이렇게 다른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셋 다 의젓하게 잘 자란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장하기도 했다. 


내 자식도 아닌데 참 뿌듯했다.



Photo by Matt Molone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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