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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Apr 21. 2021

그렇게 마음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

12 동해 번쩍서해 번쩍 할머니의 취미생활


확실히 기분 좋아지는 취미들이 있다. 나의 경우는 재미있는 드라마를 다운받아서 몇 편 연달아 보면 그게 힐링이 된다. 그리고 출퇴근길에 가수나 연예인을 끝 모르게 덕질하기도 한다. 그러면 행복해진다.


할머니는 어땠을까? 한 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어보기로 했다.


나: 할머니 취미는 뭐예요?


할머니: 학교 다닐 때는 소설책을 많이 읽었어. 그랬는데 공부를 해야(학교를 다녀야) 취미생활을 하지. 학교 졸업하고서는 어른들 밑에서 살림 배우다가 시집을 갔지. 시집에 가니까 시댁 식구들을 챙기느라 취미를 가질 여력이 없었어. 동서 내외랑 아이들 넷, 할아버지 할머니, 남편과 나 그리고 일꾼까지 꼭 열 식구가 넘는 사람들 먹을 밥을 하고 그랬으니까. 시집살이할까 봐서 아양 떨어가며 시어머님한테 붙어 다녔더니 시어머님 사랑을 실컷 받았어. 


그렇게 일 년 동안 시집살이하다가 서울로 가 가지고 할아버지랑 고생을 많이 했지. 너희 할아버지가 직장을 가진 후에도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교회를 못 나갔어.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자꾸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 할아버지가 S학교에 취직하고 나서야 생활이 조금 안정이 됐어. 


그러고서 엄마가 직장 생활할 만큼 크니까 그제야 여유가 생겼어. 너희 엄마가 나한테 볼링공을 사다 줘서 같이 볼링을 많이 쳤는데 그게 첫 취미였어. 볼링을 시작하면서 처음 취미생활에 눈을 뜬 것 같아. 그때부터 등산도 다니기 시작했고. 


우리 엄마가 큰 역할을 했구나!


나: 그때가 몇 살이셨어요?


할머니: 그때가 40대 50대였던 것 같아


나: 엄청 젊은 나이는 아니었네요?


할머니: 아니었지. 동대문에서 장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집에 있으려니까 맘이 허전하더라고. 자식들은 다 결혼했지. 나는 장사를 해서 돈도 많이 못 벌었지 그러니까. 교회 권사님들 둘인가 셋 인가랑 같이 다녔지. L권사, J권사. 근데 내가 그중에서 제일 열심히 다녔어. 김영삼 대통령 적에 그 대통령이 산행을 좋아했어. 그래서 민주산악회가 김영삼 대통령이 운영하는 회였어. 


나: 그럼 뭐 혜택이 있던 거예요?


할머니: 아니, 무슨 혜택은 없었지. 그런데 대통령이 운영하는 그런 산악회니까 산악회가 되게 컸지. 산악회에 들어가서 산에 더 열심히 다니기 시작해서 전국 산을 다 헤매고 다녔지.


나: 할머니가 다녔던 중에 제일 좋았던 산은 어디예요?


할머니: 설악산이 좋지. 그리고 도봉산도 좋았어. 서울 근교에 산이 좋은 게 많아. 불암산도 좋고. (뉴스를 보시다가) 산에 눈이 왔는데도 화재가 났다고 하네.


갑분산(갑자기 분위기는 산으로 흘러가고 있다.)


나: 할아버지랑도 같이 다닌 거예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산행을 싫어하셨어. 네 엄마도 산에를 같이 데려가려고 하면 그 힘든 산엘 왜 올라가냐고 맨날 그랬어. 근데 올라가면 그렇게 좋아. 올라갈 때는 헉헉거리고 그러는데. 올라가면 이 세상에서 왕 된 기분이야. 그렇게 마음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 민주 산악회 끝나고서도 계속 다녔어. 


어린 시절, 할머니를 따라 산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먹었던 오이 반토막이 그렇게 맛있었는데!


나: 저도 데리고 갔었잖아요. 대모산 기억이 나요.


할머니: 할아버지 위암 걸렸을 때 낫게 해 준 산이 대모산이여. 가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항암 주사 맞고 오면은 그 힘들어하는 걸 끌고 산엘 다녔어. 그게 병이 낫으려니까 그런지 가기 싫어도 싫다고 않고 나와가지고 그렇게 다녀서 나은 것 같아. 


두 번째에 할아버지가 암에 걸렸을 때엔 개천을 걷자고 하면은 안 가셨어. 억지로 두서너 번 갔나. 못 가겠다고 그래 가지고. 계속 다니고 그리고 좋다는 약 잡숫고 그랬으면 나았을 텐데. 결국 안 가서 못 갔어.


나: 산 말고는 다른 취미가 있었어요?


할머니: 그림도 그렸지. 전시회에 나가서 입선 아니면 특선도 받고 그랬었지. 대상만 못 탔어. 


나: 그 동양화 배웠을 때요?


할머니: 그 한국화 그렸지. 서예도 하고. 그런 거 참 좋아혀. 엄마 대학 입학시켜 놓고 성수동에서 서예 공부도 했었어. 글씨 연습 조금 했더니 선생이 대가 되겠다고 잘 쓴다고 그랬는데 계속 못하고 그만뒀지. 그러다가 분당에 이사 와서 한국화 공부 끝나고 서예 공부를 다시 시작했지. 그때는 한문으로 한 게 아니고, 한글을 썼어. 거기서도 잘 쓴다 소리를 많이 들었어. 그런 예능 쪽으로 소질이 있었나 봐. 


나: 그러니까 그림 그리는 엄마를 낳았겠죠.


할머니: 그런데 어째 펜글씨는 잘 못 써지는지 모르겠어. 영 이쁘게 안돼. 잘 쓰려고 애를 쓰면 더 안 써져. 그런데 어디 가서 이름 써내라고 그러잖아. 지금도 운동하러 가면 체온도 체크하고 이름도 쓰고 하는데 그런 때엔 더 잘 써져. 너희 엄마랑 삼촌은 진짜 잘 써. 너희 할아버지도 진짜 잘 썼어. 연애할 때 내가 글씨를 잘 못 써서 답장을 못했다니까. 


나: 할머니는 연애편지도 많이 받아보고 좋았겠네요.


할머니: 1년 동안 결혼 안 하고 연애를 했으니까 추억이 많이 남아 있지. 이담아,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피곤하네.

 

나: 할머니 알겠어요~내일 또 전화드릴게요.


할머니: 응. 알겠다. 잘 자라!


오늘은 피곤해하시는 할머니 컨디션을 봐서 인터뷰를 짧게 끝냈다. 할머니는 내가 모르는 취미도 많았던 것 같다. 40이 넘은 늦은 나이에 시작하시긴 했지만. 여기 이야기하신 것 외에도 할아버지와 이 곳 저 곳 여행을 참 많이 다니셨다. 아마도 나보다 여행 경력이 더 화려하신 것 같다. 지금은 기력이 많이 쇠하셔서 많이 못 돌아다니시고 힘들어하시긴 하지만, 아직도 운동을 다니시고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기력 넘치는 할머니라 다행이다.

 


Photo by nokchamini (instagram ID @nokcha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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