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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햇살 코치 Dec 30. 2021

엄마에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엄마가 되고나서 엄마를 그리다 

      

봄이 되어 벚꽃이 만발하 꽃을 좋아하셨던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7년이 지났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어가며 엄마가 하셨던 말들이 내 삶에 녹아드는 것을 알아차릴 때면 ‘너는 나야’라는 말씀과 함께 엄마가 함께 계신 듯 느끼다가 이내 사무치는 그리움이 밀려온다.


오늘은 가장 후회스러운 기억 한 자락을 잡고 엄마를 그린다.   

  



아주 오래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의 일이다.

주말이라 부모님이 계시는 집에 내려갔고, 고등학교  단짝 친구와 내 방에서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엄마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엄마 다쳤어!”


무슨 일인가 싶어 멈칫하고 있는데 드르르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엄마가 거실로 들어오셨다.


빨래를 널러 2층 옥상에 올라가셨다가 계단을 내려오며 팔을 다쳤다고 하다. 엄마의 팔을 얼핏 보니 외상 없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친구와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머니 괜찮으셔?”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가 걱정스럽게 묻는다.


“어, 괜찮으실 거야. 신경 쓰지 마”

나는 별일 아니라 생각하고 무심히 대답한다.


그날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 엄마가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앗, 입원할 정도로 다치셨구나....’     


주말에 집에 내려가 병원을 찾다. 4인용 병실의 한쪽 침대에 왜소하고 주름 가득한 엄마가 누워 계셨다. 엄마의 소꿉친구인 고모할머니도 와 계셨다.


“와 보니까 컵도 하나 없더라. 엄마가 물 없이 약을 그냥 삼켰대. 며느리는 뭐 하고 있길래 시어머니가 다쳐서 입원했는데 와보지도 않니? 전화 좀 해 봐!


엄마와 달리 당차고 입바른 소리를 잘하시는 고모할머니께서 나를 보자마자 원망 섞인 말투로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엄마는 약 하나도 제대로 못 먹고 이런 소리를 듣게 하네’라는 생각이 들며 답답함과 짜증이 올라왔다.


“언니, 언제 와요?”


평소 거의 통화도 안 하던 올케언니에게 전화해 퉁명스럽게 말을 건넸다. 정작 나는 그날도 그냥 목석처럼 말없이 멀뚱멀뚱 병실에 앉아만 있었다. 참 투박하고 무심한 딸이었다.


후일 병실을 다시 찾았을 때 옆 병상에 있던 보호자가 말했다.


“엄마가 왜 그리 올케언니를 기다렸는지 알겠네. 지난번에 다녀갔는데 딸보다 며느리가 더 상냥하고 살갑던걸.”     


지금도 이성적인 면이 강하지만, 당시에는 어리고 미숙해서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하고 공감 능력이 매우 떨어졌다. 특히 엄마를 대할 때는 더욱 그러했다. 엄마가 다쳤다는 말에도 별 느낌이 안 들었고 입원한 엄마와 함께 있을 때 어떻게 마음을 살피고 챙겨드려야 하는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이 엄마를 무시하면 너무 짜증 나고 화가 나서 대변인처럼 옹호하곤 했지만, 정작 엄마와 함께 있을 때는 신경질 부리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 했다.

엄마에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엄마는 내가 먹기 싫은 것을 먹어도 되는 분이고, 아파도 알아서 낫는 분이라 생각했다.


사춘기 딸이 날카로운 말로 나를 아프게 할 때면 돌아가신 엄마가 떠오른다. 나는 딸에게 가끔 화도 내고 야단도 치는데 엄마는 화를 내거나 야단친 기억도 거의 없다.

“나도 외할머니한테 신경질 부리고 짜증도 많이 냈어. 나중에 엄마 마음을 알게 될 거야.”

그저 이 한 마디뿐이셨다.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철없던 시절 엄마에게 했던 행동과 말을 돌아보니 죄송스러움과 후회로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상처가 있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고 먹먹해진다. 내 마음이 하늘에 계신 엄마에게 닿아, 상처는 모두 잊고 항상 ‘효녀 딸’이라고 말씀하시던 그 기억만을 가지고 편안하시길 소망한다.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신 엄마는 몸은 연약하셨지만, 정신은 강인했고 마음으로 항상 나를 지지해 주셨다. 그런데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셨다. 먹고살기 바빴던 그 시대에 그런 부모가 몇이나 되겠는가.


엄마와 나는 서로를 지지해 주고 서로에게 기대는 두 개의 투박한 통나무 같다. 건실하나 살뜰히 보살피며 세심하게 감정을 나누지는 못했다.

감정을 배워 나가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면, 엄마는 참 대견하다 하시며 흐뭇하게 웃으실 거다.


엄마는 식당에서 음식을 드실 때면 항상 말씀하셨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이걸 만들어 주시는 분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사 먹겠니? 감사히 먹자.”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면서 엄마가 했던 말과 행동의 의미를 알게 되고 나도 엄마를 닮아간다. 나에게 사랑과 감사를 알려주신 엄마에게 똑같이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엄마~ 사랑하고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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