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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햇살 코치 Feb 16. 2022

아프니까 청춘이다?

재수시절: 마음의 병이 몸으로 나타나다


© dugganw, 출처 Unsplash


중고등 학교 시절, 나는 참 건강한 아이였다.

 내 기억으로는 흔하디 흔한 감기도 일 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였다. 그런 내가 재수를 하러 서울에 올라와 홀로 지내면서부터 약을 달고 살았다. 코가 아프다가 목이 아프고 그다음엔 허리가 아프기도 했다. 한 가지 약이 끝나면 다른 약으로 바꿔 먹으며 재수생활 내내 약에 의지 했다. 그러더니 가을 무렵부터인가는 오후 세 네시가 되면 밀려오는 허리 통증으로 제대로 앉아 있을 수 조차 없었다.

 

재수 생활하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제도권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불안감이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집을 나와 홀로 지내는 타향살이도 낯설고 힘들었고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매일매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스무 살 고지식한 여자 아이가 혼자 감내하기에는 당시 내 세상의 폭이 너무나 좁았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하숙집을 나와 터덜 터널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학원으로 향했다. 창문도 없는 강의실에 들어서면 하얀 벽과 형광등 불빛이 차갑게 느껴졌고 책상과 의자가 빼곡히 놓여 있어 답답함이 느껴졌다. 교실 창 너머로 목년꽃과 벚꽃이 흩날리던 교정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던 여고 시절과는 딴 세상이었다. 하지만 답답함을 느끼는 것조차 사치스럽다 단죄하며 마음을 다잡고 밤 12시까지 공부에 전념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성적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몸은 아프고 열심히 하는데 성적은 오르지 않고 남겨진 건 극심한 두통과 좌절감이었다. 

결국 두통이 너무 심해져 도저히 학업을 지속할 수가 없어 부모님 계신 지방 집으로 무작정 내려갔다.


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찾았으나 그저 신경성이라 말할 뿐 신통한 처방을 내리지 못했다. 축 쳐져서 손에는 약봉지를 들고 허름한 도립 병원을 나와 집으로 왔다. 그리고 그 길로 잠에 빠졌다. 

자고 나면 엄마가 해 주신 음식을 조금 먹고 또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내려올 때는 며칠 쉬면 바로 올라갈 줄 알았다. 

하지만 도저히 다시 서울로 올라갈 힘이 생기지 않았다. 

그저 나는 잠 속에 빠졌고 엄마는 그런 내 옆에서 함께 누워 계셔 주셨다. 

하숙비와 학원비 등 생돈이 날아갔고 시간이 점점 흐르고 있어 마음이 타 들어가셨을 텐데 아버지는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아무 말씀 없이 묵묵히 지켜만 보셨다.

 

한 달이 지나자 하숙집 룸메이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짝꿍아, 많이 아파? 너 안 올라오는 거야?"

 

수화기 너머로 짝꿍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으면 갈게."


나는 짧게 답했다. 전화를 받고 서야 시간이 많이 지나긴 했구나 실감했다.

그러고도 또 며칠이 흘렀던 것 같다.

자고 일어나 욕실에 갔는데 코피가 쏟아졌다. 

뚝뚝 떨어지는 선홍색 피를 보니 왠지 머리가 시원해졌다. 

그리고 이제 올라가야겠다는 마음이 가슴 중앙에서 고개를 들었다.

 

마음을 다잡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오랜만에 오니 콩나물시루 같은 재수학원이 새롭게 느껴졌다. 

며칠 후 모의고사가 있어 시험을 봤다. 

그런데 어느 때보다 머리가 맑고 가벼웠다. 그리고 문제가 쉽게 느껴졌다.

 

담임 선생님이 시험 성적표를 내주시며 깜짝 놀라며 나를 다시 한번 쳐다보셨다. 성적표의 석차란에 있는 % 수치를 보고는 나도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받은 성적 중에 가장 높은 점수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꿈쩍 않던 성적이 마침내 마음을 비우고 나니 올랐다. 

동굴처럼 느껴졌던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저 끝에 살며시 빛이 들며 희망이란 게 보이는 듯했다. 정말 오랜만에 따스한 햇살이 비치듯 마음이 가볍고 밝아졌다. 살며시 미소도 지어졌다. 

스무 살 청춘은 그렇게 아프면서 지나갔다. 




나는 유독 아플 때 잠을 많이 잔다. 며칠을 자고 나면 기운을 차리고 회복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파서 누워 있을 때면 그 시절 내 곁에 누워주셨던 엄마와 묵묵히 지켜봐 주셨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피로가 벽돌처럼 한 장, 한 장 쌓이고 내 몸은 그것을 견디고 견딘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어느 순간 그 벽돌들은 와르르 무너져 나를 잠 속으로 안내하는 듯하다.

그때는 여지없이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친다

오늘도 부모님이 참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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