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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햇살 코치 Jan 04. 2022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

오랫동안 외면했던 내면 아이를 만나 화해하다

  

아침에 잠에서 깨서 눈을 떴는데 순간 몸이 움찔하며 힘이 들어간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가슴이 시린 느낌이다.

‘이게 무슨 느낌이지? 무언가 익숙한데…….’

몸의 느낌을 붙잡고 머릿속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기억의 필름이 순식간에 돌아간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장면에서 멈춘다.     

                                     




“쿵!!!”


천둥과 같은 소리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고 눈이 번쩍 떠진다. 

‘뭐지?’ 놀란 상태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살핀다.

아버지가, 엄마와 내가 자고 있던 방문을 문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크게 닫고 가셨다.

불안감에 심장이 쿵쾅쿵쾅 사정없이 방망이질을 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뜨거워지는데 가슴은 점점 시려 와 두꺼운 얼음장이 생기는 듯하다. 이 싸한 느낌은 공포에 가깝다.     


어제저녁에 아버지와 엄마는 심하게 말다툼을 하셨다. 좀처럼 아버지와 맞서서 싸우지 않으시는 엄마가 그날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함께 언성을 높이셨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안방에서 나는 큰 소리에 귀를 쫑긋하고 집중했다. 불안감에 떨고 있는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아버지가 문을 쾅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후유…….’ 


그제야 크게 숨을 쉬고 졸인 마음을 달랜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 숨통이 트인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밤이 깊어질수록 아버지가 어떤 상태로 오실지 엄마와 나는 불안에 떨어야 했고, 집안은 정적 속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버지는 소주를 대여섯 병 사서 들어오셨다. 뚜껑을 따고 안주도 없이 선 채로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셨다. 방에서 술에 취한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구. 한 오백 년을 살자는데 웬 성화요.”


‘한 오백 년’은 술을 드신 아버지의 애창곡이다. 이 노래가 나는 너무너무 싫었다. 그나마 이 노래가 나올 때쯤이면 폭풍이 한풀 꺾인 증거라 그나마 한시름 놓는다.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잦아들자 나는 꽉 조였던 몸의 긴장을 풀고 스르르 잠이 든다. 그렇게 선잠을 자던 중 ‘쿵’하고 문 닫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아버지의 행동에 몸서리가 쳐졌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조용하다. 엄마는 상처 받은 마음을 추스르러 마음공부를 하러 가셨나 보다. 거실에서 소주 냄새를 풍기며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며 아버지가 대자로 누워 주무시고 계셨다. 숨 막히는 집이 답답하고 싫어서 옷을 챙겨 아버지가 깰세라 살금살금 거실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온종일 친구네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이문세와 변진섭의 음악을 들었다. 친구 방은 몽글몽글 부드러운 감촉의 봉제 인형들이 있었고 포근하고 아늑했다. 그야말로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안식처였다. 나는 그곳에서 안식을 취하며 불안에 떨었던 마음을 달래며 평안을 얻었다.


저녁이 되어 친구 집에서 자고 가도 되는지 물어보러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한숨 섞인 목소리로 한마디 하셨다.


“하루 종일 어디 있었어?” 


무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어. 혼수상태였는데 지금은 깨어나셨어.”

“뭐?” 


혼수상태라는 말에 깜짝 놀라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아침에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겁이 났다. 주무시는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중환자실 앞에는 연락을 받고 온 큰아버지와 언니 오빠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얼마 있으니 집에 들렀던 엄마도 초췌한 모습으로 오셨다.


“네 아버지 깨어났으니 망정이지 이대로 그냥 갔으면 친척들한테 나만 원망 들을 뻔했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눈에 독기를 품고 냉랭하게 말씀하셨다. 엄마에게 억울함과 분노가 느껴졌다. 무슨 일 때문에 엄마와 아버지가 싸웠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사경을 헤매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상황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엄마가 불쌍하기도 하고 정나미 떨어졌다.


“엄마는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와?” 


나는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엄마는 더 말씀은 안 하셨지만,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나는 요즘도 잠을 자다가 큰 소리가 들리면 깜짝 놀라 깨어난다. 그때는 여지없이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그날 문소리에 놀란 아이는 아직도 가슴 졸이고 무서움에 떨며 내 안에 살고 있다. 그동안 나는 그 아이가 떨고 있는데도 달래주지 않고 혼자 내버려 두었다.


오늘 그 아이를 만나러 간다.

아이는 어두운 방에서 고개를 숙이고 웅크리고 앉아 혼자 떨고 있다.


“많이 놀라고 무서웠지? 늦게 와서 미안해. 이제 내가 너를 지켜줄게. 걱정하지 마.”


내 말에 아이가 소리 없이 운다. 나는 아이의 가슴에 가만히 손을 댄다.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리며 뛰고 있다. 한손으로 지긋하게 누르고 다른 손으로 아주 오랫동안 토닥인다. 그리고 두 팔을 감싸 꼭 안아준다. 내 체온이 아이에게 전해져 아이의 몸도 따듯해진다. 그제야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나를 보며 미소 짓는다. 그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된다. 


“힘들었지? 이제 괜찮아.”       


앞으로 더 자주 아이를 만나 토닥이고 안아줘야겠다. 




내 안에는 아직 어린 아이가 있다. 아이가 안심하고 세상밖으로 거침없이 나가기 위해서는 어른인 나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어느 날 아이는 나만큼 성장해서 떠나리라. 풍요로운 세상속으로 자유롭게 나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게 될 날을 즐겁게 꿈꾼다.        



**내면아이를 만난 경험을 이야기로 담은 오디오클립입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8079/clips/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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