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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햇살 코치 Dec 23. 2021

오만했던 여고생과 아버지의 흉터

우울했던 사춘기 여고생, 아버지의 아픔을 알다


아버지가 일곱 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8남매의 막내였던 아버지는 큰형을 아버지처럼 따르며 자랐고 국민(초등) 학교도 채 마치지 못하셨다.


"내가 초등학교만 나왔어도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술을 드신 날이면 항상 빠지지 않고 이 말을 하시며 힘들어하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짜증스럽기만 했다. 어서 독립해서 아버지 그늘을 벗어나고 싶다는 다짐만 더욱 강해졌다.


젊은 날의 부모님


벽에 걸려 있는 빛바랜 액자의 사진 속 젊은 아버지는 조각 같은 얼굴에 당시 잘 나가던 배우 신성일보다도 더 잘 생기셨고 훤칠한 키에 체격도 좋고 눈웃음을 짓고 계셨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은 오직 건강한 몸이 전부였던 아버지는 근면 성실을 모토로 입을 악물고 몸뚱이가 부서져라 일하셨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화전을 일구고 산판에 가서 나무를 지고 나르고 비료 포대를 운반하는 막노동으로 집안을 일구셨다고 한다. 


육남매의 막내였던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얼굴이 까맣게 그을리고 검버섯이 있고 고생의 흔적이 가득 담겨있다.


고등학교 때 학부모 회의가 있었다. 교실 뒤에 부모님들이 서 계셨는데 다른 아이들의 엄마 사이에 우리 아버지만 까만 얼굴로 서 있어서 창피하고 싫었다. 그 시절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나는 우리 집의 모든 것이 싫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컸다.




아버지는 그동안 번 돈을 모아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삶이 힘겨울수록 술을 드시고 주정을 하는 날이 많아지셨다. 아버지의 길고 긴 공치사를 듣는 게 지루하기도 하고 진저리 치게 싫었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아버지를 무시하며 쌀쌀맞고 무뚝뚝하게 대 했다.


하루는 술을 드신 아버지가 좁고 어두운 방에 나의 무릎을 꿇린 채 말씀하셨다.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언젠가 지금 한 말을 떠올리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야.”


말씀을 하시며 아버지는 나에게 손등을 내미셨다.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들었고 십자 모양의 흉터가 보였다.


책임감이 강하고 강인하셨던 아버지는 막내지만 맏이처럼 집안을 일구셨다. 결혼한 후에도 팔남매는 가족공동체였고 군대에 가셨던 아버지는 집안 경제를 위해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오셔야 했다.


“집에는 가야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더라고. 내가 스스로 내 손등을 내리쳤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를 생각해 봐.”


‘아 정말 짜증 나. 뭐라고 하시는 거야?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술 드셨으면 조용히 주무시지 고리타분한 이야기만 길게 하고......’


오만과 아집,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똘똘 뭉쳐 있던 사춘기 여고생은 온갖 짜증과 불만 섞인 표정으로 아버지의 술주정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세월이 흘러 나도 가정을 이루고 역경을 만나 삶의 무게를 마주했을 때 아버지의 십자 모양의 흉터와 술에 취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스쳤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나고 이제야 그날의 아버지를 마주한다.


-얼마나 절박하셨으면 스스로 손에 상처를 내셨을까.

-오른손에 칼로 쥐고 당신의 왼손 등을 내리칠 때 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셨을까

-또 얼마나 삶이 힘들었길래 철없는 여고생 딸에게 당신이 꼭꼭 간직했던 과거 당신의 행동과 상처를 말씀하셨을까


가슴이 사무치고 아파서 눈을 감는다. 꼭 감은 눈에서 자꾸만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오만했던 여고생 딸의 뒤늦은 사죄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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