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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햇살 코치 Feb 07. 2022

울음보 터진 첫 서울 나들이

호기심 많던 어린아이, 서울에서 길을 잃다

육남매의 장남이자 우리 집 기둥인 큰오빠는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그야말로 집안의 경사이자 아버지의 자부심이었다.

오빠가 다니던 육군 사관학교에서 가족들을 초대해 행사를 열었다.

부모님과 언니, 오빠들 그리고 큰아버지 식구들까지 서울로 올라갔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첫 서울 나들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서울구경을 시켜준다며 내 양쪽 귀를 양손으로 잡고는 번쩍 들어 올리시곤 했다. 그런데 이제 정말 서울에 가다니 아홉 살 꼬마에게는 신나고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안타깝게도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에서 지워져 가물가물한데 딱 두 장면은 아직 생생히 남아있다.




#1. 서울타워 구경


© director_kim, 출처 Unsplash


우리 가족들은 학교 행사에 참석한 후 당시 남산타워라 불리던 서울타워 구경을 갔다. 아버지가 표를 끊고 온 가족이 케이블카를 타려고 줄을 섰다. 나는 아버지 뒤에 바짝 붙어서 기대에 부풀어서 기다렸다.


드디어 케이블카가 도착했고, 문 앞에 유니폼을 입은 아저씨 한 분이 서 계셨다.


"이 아이는 몇 살인가요?"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데 아저씨가 질문하셨다.


"예. 일곱 살입니다."

아빠가 답변하셨다.


나는 아빠의 답변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 아빠가 내 나이를 잘못 알고 계시는 거다.

영리하고 정의감 넘쳤던 나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했다.


"저 아홉 살데요!"

나는 주변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로 큰 소리로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내 어깨를 툭 치셨다.


"아이가 아주 똘똘하네요. 표 사서 오셔요."

아저씨가 허허 웃으며 말씀하셨다.


"표 값 아낄 수 있었는데....."

못내 아쉬우셨는지 아버지는 나에게 꿀밤을 한 대 주셨다.

나는 왠지 억울하기도 하고 잘못했나 싶어 풀이 죽어 얌전히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돌아보면 참 재미있는 해프닝이다.

대가족의 없는 살림에 케이블카 비용을 줄여 보고자 내 나이를 속였던 아버지가 당시 얼마나 당혹스러우셨겠는가.


순수하고 곧이곧대로였던 꼬마 아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사실 나도 공원 입장료를 몇 번 안 내고 들어간 적이 있다.

큰돈은 아니지만, 참 달콤한 유혹이었다. 왠지 스릴 있고 큰돈을 아낀 것처럼 뿌듯함까지 느꼈으니 말이다.


아버지께 죄송했다고 말씀드려야 하나?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혼자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 2. 코스모스 백화점에서 점심 식사


 점심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당시 '코스모스 백화점'이라 불리던 쇼핑몰에서 먹었다.

시골(촌)에서 올라와 처음으로 높은 건물에 가게들이 빽빽하게 들어있는 쇼핑몰을 보니 이 또한 신기했다. 그런데 나의 마음을 홀라당 사로잡은 신문물이 있었으니 바로 에스컬레이터였다.

계단처럼 생긴 곳에 발을 올리니 고 녀석이 저절로 움직여서 올라가는 거다.

이게 어찌나 신기했던지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마음속으로 내려가는 방향을 꼭 타보리라 결심했다.


점심 메뉴는 중국음식이었다.

커다랗고 둥근 테이블에 흰색 면보가 씌어져있고 위는 유리로 덮여있었다.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어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셨다.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점심을 먹는 내내 내 관심은 오로지 에스컬레이터였다. 눈치를 보며 어른들 몰래 빠져나갈 시점만 호시탐탐 살폈고, 살며시 식당을 빠져나왔다. 들킬까 봐 어찌나 마음을 졸였던지, 식당을 나와서는 쏜살같이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달려갔다. 에스컬레이터와 식당의 위치는 이미 가는 길에 완벽히 익혔기에 나는 바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물론 길을 잃어버리면 안 되기에 되돌아갈 식당의 위치도 머릿속에 단단히 저장해 놓았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려놓고 가만히 서 있는데 거사를 성공시킨 투사처럼 짜릿한 성취감이 느껴졌고 가슴이 흡족함으로 가득 찼고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미소가 번졌다.


시간은 금세 지났고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가족들이 있는 중국식당으로 달려갔다.


'어라! 분명히 위치가 맞는데 붉은색 중국집 입구 대신 다른 가게가 자리를 잡고 있다. 순간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 주파수가 안 맞는 라디오처럼 머릿속이 지지직거리며 뒤죽박죽 뒤엉켰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중국집은 보이지 않는다. 두려움이 밀려오며 몸이 굳었다.


뭔가 잘못되었고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아챈 그 와중에 머릿속에는 휘리릭 한 장면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TV 드라마에 보면 고아원에 있는 아이가 부잣집으로 입양되던데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맹랑하고 불손하게도 그 어린아이는 위기의 순간 엉뚱한 미래를 꿈꿨다. 아버지가 워낙 무서웠고 집이 가난해서 안락한 가정을 갖고 싶은 소망이 마음 깊이 있었나 보다.  


© arwanod, 출처 Unsplash


그런데 속 마음과는 달리 왜 이리 눈물이 나는건지 그만 으앙~ 소리와 함께 울음보가 터졌다. 그러자 주변 가게 주인이 나에게 다가와 이것저것을 묻는다.


"이름이 뭐야? 집은 어디니?"


분명히 길을 잃으면 이름과 집주소를 또박또박 말하라고 학교에서 배웠고 야무지게 외우고 있었건만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그저 울음소리만 더 커졌다.


결국 쇼핑몰 전체에 미아보호 방송이 울려 퍼졌다.


"아래위 빨간색 옷을 입고 갈색 구두를 신고 양갈래 머리를 한 여자 아이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보호자께서는 OOO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을 듣고 갈색 치마 정장을 입은 큰언니가 헐래벌덕 달려왔다. 언니 손을 꼭 잡고 가족들이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아뿔싸!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층이 달라지는데 내가 그걸 생각하지 못했다.

아쉽다. 완전범죄(?)가 될 수 있었는데......'


그제야 왜 식당을 찾지 못했는지 알았다.

영리한 내가 그걸 놓치다니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첫 번째 서울 나들이는 이렇게 강한 추억을 남기고 마무리된다.



                                           ********



서울 생활 30년째!

이제는 고향인 충주보다 서울에서 산 세월이 훨씬 더 길다.

그리고 서울이 더 익숙하고 편해서 서울 어느 곳에 떨궈 놓아도 여유있게 집에 올만큼 성장했다.


첫 서울 나들이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르며 그 시절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안녕! 귀여운 꼬마. 잘 가렴~. 추억 속 너를 만나 반가웠어"


추억팔이를 하는 것 보니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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