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그림자가 되었다.' (랭보의 시에서)

2024.2.20.

by 친절한 James


하얗고 달콤 상큼한 날이었다.

솜사탕을 좋아하는 애들 입맛,

X가 좋아하는 간식을 닮은 풍경이

하루종일 펼쳐졌다.


새벽부터 비가 왔다.

커튼을 밀어젖히니, 세상에.

밖에 보이는 건 그저 새햐얀 배경뿐,

그렁그렁하던 아파트 단지들도,

길도, 사람도, 자동차도 모두

눈덩이보다 무거운 색채 속에

그윽이 파묻혀버렸다.

희미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우유 바다 깊은 심해에서 목적지를 잃고

방황하는 모습이 X를 닮았다.


연애할 때 좋게 보였던 점이

결혼하면 아쉬운 점이 되기도 하고

이래도 괜찮을까 우려한 점은

나중에 큰 단점으로 불거지기도 했다.

사람을 만날 때 그 집안을 보라고 하던데

그건 단순히 외적인 조건뿐 아니라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잘 살피라는 뜻.

자식은 부모를 닮기에,

절대로 물려받고 싶지 않은 부분도

살다가 문득 태도로 튀어나오기에,

개선하려는 노력은

성공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기에.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말 그럴까 했는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무섭고 서글펐다.

분별없는 친절함은

애정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

살가운 말 한마디,

배려 아닌 배려는

안개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남과 다르지 않은 모양새는

남보다 못한 마음가짐.

그런 사람이라는 한계,

그 경계에 갇혀버린 걸까.

자격이 없는 걸까,

자격지심일까.

자격 미달일까.

명치에 파고드는 감정은

짐승의 송곳니보다 더 날카로웠다.


오후 늦게까지 해가 뜨지 않았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은 그림자가 되었다.

그늘에 뒤덮인 풍경 속에서

지난 선택과 시간을 떠올리다

얕은 잠에 들어 방황했다.

고약한 안개는 저녁이 되어서야

흥건한 자취를 남기며 조금씩 사라졌다.

맑은 어둠이 길바닥에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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