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아이고"
Q는 사망했다.
800억에 달하는
막대한 유산을 남기고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매일 산책과 수영을 즐기며
전담팀의 엄격한 식단 관리와
주치의의 주 2회 방문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고혈압이 있긴 했지만
어떤 징조도 없던 갑작스러운 죽음은
가족을 큰 슬픔으로 몰아갔다.
장례식 전날, 그러니까
Q의 죽음 바로 앞 날은
그의 일흔 번째 생일이었다.
구두쇠 영감의 칠순 행사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였다.
자녀 3명과 그들의 배우자들,
그리고 다섯 손주까지.
별거 중인 Q의 아내는 끝끝내 오지 않았고
그의 내연녀, 셋째의 생모가 참석했다.
모처럼 Q의 저택이 시끌벅적했다.
진수성찬이 가득했고
옅은 웃음과 건조한 덕담이 오갔다.
Q가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도
다양한 크기와 디자인으로 그득했다.
그것도 건강에 민감한 Q를 위해
단맛이 별로 없는 쌉쌀한 맛으로.
Q는 초콜릿을 아주 좋아했는데
맛이 단 초콜릿은 병적으로 싫어했다.
아무튼 즐겁게만 보였던 날이 저물고
둘째네는 먼저 집으로 갔다.
첫째네와 셋째네는 Q의 집에서
하루를 머물고 각각
다음날 오전과 오후에 떠났다.
그리고 그날 저녁 Q가 목숨을 잃었다.
15년 동안 그를 돌본 집사가
쓰러진 그를 처음 발견했고
Q의 내연녀가
곳곳에 연락을 했다.
지금까지의 일들이
장례식 전날의 전모다.
그는 세 자녀를 사랑했지만
막내딸을 유독 더 사랑했다.
첫째는 아들이었다.
그는 맏이의 권위의식이 있지만
자격지심도 있었다.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갖은 지원에도 공부를 잘하지 못해
6년의 도피 유학을 빈둥거리다 귀국했다.
취업의 의지가 없는 그는
아빠의 도움으로 부동산 임대업을 했다.
그녀의 부인,
Q의 맏며느리 X는 피아니스트였다.
Q는 골프 친목 모임에서 지인의 소개로
X를 첫째 아들에게 이어주고
결혼에 이르게 했다.
첫째가 만나던 연인을 강제로
헤어지게 만들고.
X의 집안은 Q의 주요 사업 파트너였고
덕분에 Q는 더욱 공격적인
사업 확장이 가능했다.
둘째도 아들이었다.
어릴 적부터 눈치가 빠르고 계산적이었다.
법학을 전공해서 사법연수원을
1등으로 졸업했다.
형과의 미묘한 갈등은 두 형제를 대하는
Q의 다른 태도 때문이기도 했다.
둘째는 더 인정받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는 국내 최대 로펌에서
상속전문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그의 배우자 K 역시 변호사로
민사전문 자격을 갖고 있다.
두 아들은 본부인으로부터 낳았고
셋째인 딸은 Q가 자신보다 20살 어린
내연녀 M과의 사이에서 낳았다.
M의 딸은 미혼이며
대형 투자회사에 소속된 펀드 매니저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애교도 많고 어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할 줄 알아서
Q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Q의 부검 결과는 뇌출혈이었다.
장례가 끝나고
Q의 유산분배에 대한 분쟁이 생겼다.
기여분과 특별수익, 가치평가를 두고
첫째와 둘째의 의견 차이가 컸다.
Q는 자필 유언이나 공증 없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기에
자식 간의 다툼이 더 커졌다.
여기서 셋째는
별다른 주장을 하지 않았다.
Q의 본부인과 M은 종종
유산 이야기를 꺼냈지만
Q는 그동안 유언 작성을 미뤄왔다.
오랜 다툼 끝에 법정상속분에 따라
유산을 분배했지만
그 누구도 진심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식들은 전보다 사이가 더 나빠졌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평일에도 사람이 가득한 공항,
누군가 백팩을 메고 캐리어를 끌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으로 향하는 그.
1년 전
Q의 부검 감정서를 썼던 법의관이었다.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는
출국 심사 전 그는 뒤돌아보며
어딘가를 향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가벼운
목례를 하며 사라졌다.
그의 시선이 닿았던 곳에는
짙은 선글라스에 검은색 코트를
입은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그가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손에는 Q의 사인이
아스피린 약물 중독이라는
부검 결과가 적힌 서류가 있었다.
잠깐 떨리던 손은 가위를 집어
종이를 잘게 잘라 변기에 뿌렸다.
빨려 들어가는 물줄기 사이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유유히 화장실을 나왔다.
아스피린은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성을 줄여준다고 하지만
치사량에 달하는 과다 복용은
출혈, 발작, 과호흡을 일으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음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고
그날 다량의 아스피린 가루를
미니 초콜릿케이크에 섞었다.
Q는 어릴 때부터
초콜릿을 중독될 정도로 사랑했고
특히 벨기에산 초콜릿만 고집했다.
그녀는 특별히 공수한 초콜릿으로
단맛이 별로 없고
쓴맛이 강한 케이크로
생일상을 가득 채웠고
다음날 Q는 사망했다.
그녀는 Q가 제일 좋아할
케이크의 크기와 디자인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렇게 가시면 어떡합니까."
그녀는 한마디 툭 내뱉고 차에 올라탔다.
Q가 많이 아끼고 사랑했던 그녀는
바로 M의 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