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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May 02. 2024

엄마는 말씀하셨다

2024.5.2.


"얘야, 우리 아들... 잘 있지?"

"네, 엄마. 저는 잘 있어요.

 엄마는 어때요? 좀 괜찮아요?"

"나야 늘 비슷...하지. 괜찮아."


어눌한 말뭉치가 수화기 틈새로 새어 나왔다.

H는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움켜쥐려고

이를 꼭 다물고 침을 삼켰다.


"알겠어요. 좀 힘들어도 밥 잘 드시고

 조금씩이라도 걸으세요."

"그래... 알겠어. 아들도... 잘 지내."


밥을 잘 못 먹지만

밥을 잘 먹으라고 하고

걸음을 거의 못 걸어도

조금씩 걸으라고 하는 말,

이제는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때가

조금씩 말라가는,

모래시계에서 무정한 모래가

고운 물결을 떨구는 듯

메마른 H의 마음에

도톨도톨한 비애가 튀어 올랐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지난달까지 혼자 화장실도 갈 수 있던

엄마의 병세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이제는 혼자서 거동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밥도 잘 못 드시고 먹는 음식의 태반은

식도가 아닌 입 밖으로 떨어졌다.

살은 물컹해지고

정신은 물크러졌다.

매일 드리는 안부 전화를

못 받는 날도 점점 늘어갔다.


그러게, 건강 검진을 잘 받으셨으면

병도 빨리 확인하고

조치를 취했을 수도 있었겠다.

아니, 사실 너무 늦게 발견한 건 아니었어.

항암도 꽤 차도가 있었잖아. 상태가 좋아서

수술이 잘 되면 예후가 상당히 좋을 수 있었지.

수술 위험성을 줄이려던 의료진의 머뭇거림은

내성을 불러왔고 예상치 못하게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증상은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얼마나 곁에 있어주실 수 있을까.

6개월을 넘기기 어렵다고,

믿을 수 있는 의사가 말했다.


H가 결혼을 하던 날이었다.

작은 결혼식, 간소한 북적거림,

그리고 들끓는 감정의 메아리.

돌이켜 보면 엄마는

가발을 쓰고 고운 모습으로

힘겨운 자리를 지키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엄마는 말씀하셨다.

아들이 참 좋은 사람 만나서

정말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처음에 결혼을 반대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정말 행복하고 건강하라고. 아이를 낳으면

많이 키워주려고 했는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봄의 끝자락,

문득 어머니가 떠올라

H는 그리움에 복받쳤다.

엄마의 말씀처럼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요. 저와 아내를 닮은 예쁜 아기도

태어나서 잘 크고 있고요. 엄마는 거기에서

잘 지내시죠? 나중에 만나면 못다 한 이야기

많이 나누어요. 고맙고 사랑해요.

봄비를 닮은 물방울이 건조한 뺨을 적셨다.

H의 오후가 썰물처럼 저물어 갔다.


https://youtu.be/sfxQUbc2_Pk?si=uaX3-cqsZXwHsuiZ

엄마는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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