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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n 14. 2024

'우리가 ___에 살던 시절에'

2024.6.14.


해맑은 아침이 밝아왔다.

밤새 으르렁거리던 폭우는

말끔히 사라지고

투명한 하늘이 활짝 피었다.

오렌지꽃 향기가 바람에 날릴 듯

상쾌한 공기가 가슴을 깨웠다.

초록빛 카디건을 걸친 앞산 위로

사방을 비추는 햇살이 떠올랐다.

빛의 커튼이 앞마당에 드리우며

테라스를 간질였다.

차가운 밤의 습기에서 떨던 집이

다시 기지개를 켰다.

일상으로 깨어날 시간이군.


탁 트인 거실은 양쪽으로 창이 나 있고

빼곡한 책장을 아름드리 두르고 있다.

앞산을 마주한 큰 창은 미닫이 통창인데

이 집 식구들이 '토토'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야트막한 앞산을 통째로 담아낸다.

아침해가 떠오르면 금빛 가득한 이중창이

떨리듯 설렘 가득 반짝거린다.

여기에는 함박눈으로 빚은 듯한

반투명 얇은 커튼과 도톰한 짙은

암막 커튼이 달려 있는데,

평소에는 큰 창 양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묶여 허수아비처럼 서 있다.

맞은편 작은 창은 밀고 당겨 여닫을 수 있는데

방실대는 개울과 형형색색 들꽃밭이 한가득이다.

촉촉한 편안함에 꽃향기가 배어 창으로 들어온다.

먼발치 산줄기가 오르락내리락 보이고

지중해 빛깔을 닮은 하늘이 푸르게 펼쳐져 있다.

두 창 사이는 아장아장 걸음마로 백 보쯤 되지 않을까.

L과 K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햇볕처럼 포근한 찻잔 두 개가

춤추는 인형처럼 모락모락 입김을 내고 있다.

두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면

앞마당에서 가볍게 산책과 스트레칭을 하고

거실 큰 창 앞 작은 원목 테이블에서

여유로운 티타임을 갖는다.

루이보스와 캐모마일, 또는 페퍼민트 같은

허브차를 주로 마시는데

가끔 원두커피로 기분을 내기도 한다.

밤새 누웠던 몸에 햇살을 쬐며

향긋한 일과를 시작하는 아침은

두 사람에게 소중한 루틴이 되었다.


"참 좋다."

"그래, 좋아."

첫 포옹처럼 따스한 온기가

찌르르 목을 타고 넘어갔다.

감미로운 찻향이

코를 적시고 머리를 깨운다.

"우리 첫 보금자리 마련했던 때가 떠올라.

  오피스텔 원룸 월세에서 시작했던 때가

  지난주 같은데."

"그러게, 거기서 시작해서 전세로 옮기고

  알콩달콩 살다가 소중한 우리 이삭이가 찾아오고."

"용기 내어 자가를 마련하고, 아기를 키우고, 나이 들고."

"결국 우리가 꿈꾸며 그려 온,

  우리가 살고 싶어 하던 집을 지어서 사는 지금,

  참 감사하고 행복해."

"다 내 사랑 덕분이야."

"아니야, 내 사랑 덕분이지."

"우리가 마음이 잘 맞아서 다 잘 이루어진 것 같아."

"맞아, 평생의 행운, 배우자 덕분이네."


우리가 셋방에 살던 시절,

무모해 보였던 '내 집짓기'의 꿈은

행복 가득 피어나는 일상 속에서

어느덧 생생한 현실이 되었다.


우리가 ___에 살던 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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