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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n 13. 2024

그것은 화요일에 도착했다

2024.6.13.


아, 뭐였더라.

어제 점심 메뉴도 잘 기억이 안 난다.

매일 24시간의 틈새마다 생각하고 행동한

모든 것들이 다 떠오르지는 않는다.

중요도에 따라 특별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지만

망각은 그런 임의의 구별에

큰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아무튼, 습관처럼 일어나

기계처럼 움직이던

어느 평일을 뒤흔든 건

'그것'이었다.


그것은 화요일에 도착했다.

갯벌처럼 찐득거리는 마음 가득했던

일터에서 돌아온 지친 눈길이

집 앞 택배 상자에 맺혔다.

흔한 종이 박스는 아니었지.

다듬지 않은 흰누런 판자로 만든,

투박하지만 뭐랄까, 짜임새 있는

나무상자라고 할까.

네모 각 변의 양쪽으로

검지보다 약간 짧은 길이의 목재가

덧대어 있고 모서리마다

달팽이 눈알 같은 못대가리가

끔뻑거리는 것이 마치 각목으로 만든

철골 속에 나무통을 박아서 끼운 듯했다.

조금씩 안쪽으로 들어간 네모 면적들은

멀리서 보면 금속재질처럼 보였다.

윗면에는 외국어가 검푸른 도장으로

찍혀있고 옆 스티커 송장에도 뭔가 있다.


"마다가스카르?"

익숙한 듯 낯선 이름, 섬나라였던 것 같은데.

아프리카 쪽이었나. 궁금증이 꼬리를 물다가

그 옆에 새겨진 이름 위에서 숨이 멈췄다.

"아, 아빠?"

숨 한 번 마시고 내쉬는 짧은 순간,

지난 20년의 아픔과 슬픔이 메아리쳤다.

이건 뭐고 왜 이제야 왔을까.

뛰는 가슴에 눈앞이 아찔했다.

일단 상자를 집 안으로 옮기고 열어보자.

마음이 바빠졌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뭔가 살짝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H는 낑낑거리며 상자를 현관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방으로 들고 가긴 힘들고

여기서 열어봐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열지?" 그냥 택배 상자라면

칼로 위쪽 테이프를 쭉 잘라 양옆으로

열면 되지만 나무상자는 그럴 수 없지.

H는 잠시 고민하다가 창고 구석

연장통에서 장도리와 펜치를 꺼내왔다.

빨간 목장갑도 야무지게 꼈다.

허리 높이의 상자, 열 테면 열어 보라는 듯

담담하게 서 있다. 이제 판자를 뜯어내고

내부를 들여다볼 시간이야.

못이 너무 촘촘히 박혀있네.

장도리로는 안 되겠는걸.

창고에서 다시 쇠지렛대를 꺼내왔다.

재작년 이사 올 때 쓸 일이 있을까 버릴까

고민하다가 챙겼는데 놔두길 잘했네.

못 빼는 공구가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아쉬운 대로 이걸 써봐야지.

H는 쇠지렛대로 못을 들어 올리고

장도리와 펜치로 못을 하나씩 뽑아 올렸다.

못이 하나씩 없어지면서

가슴에 긴장이 하나씩 박혀 들었다.

뭘까, 드디어 뚜껑을 열었다.

아, 이건...

H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것은 수많은 편지와 사진,

흥미로워 보이는 기념품,

그리고 단단히 밀봉된,

유분(粉)이 담긴

비취색 항아리였다.


그것은 화요일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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