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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n 20. 2024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정거장

2024.6.20.


발밑을 구르는 엔진소리가 뭉클했다.

창밖에 눈 내린 풍경이 펼쳐졌다.

계절을 달리하며

익숙한 새로움을 안겨주던 곳,

수많은 만남과 흩어짐이

물안개처럼 자욱하게 내려앉은 곳.

이제 이곳에서 또 다른 인연이 싹트겠지.

아직은 앞을 알 수 없는

떨리고 설레는 시간이 기다릴 거야.

밀물 같은 그리움이 나를 띄워

어디론가 실어줄 하루.

오늘이 그날이 될 예감이다.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정거장이다.

이곳에 올 때는 대개 지하철을 탔다.

만남의 장소가 역과 멀지 않다.

그곳은 공연장과 전시장,

카페가 오순도순 모여있어

늘 사람이 많다.

가끔 지인과 마주쳐 놀라운 인사를 건네고

쓸쓸한 상념을 흩날리며 방황하던 곳.

특별한 날에만 버스를 탔다.

고속도로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설 때면

곧 마주할 시간이 마천루처럼 솟아났다.

"이런 기대감이 난 좋아."

이제 버스는 H가 내릴 정거장으로 출발했다.

하차벨을 누를 때가 되었다.

옅게 내린 눈이 녹은

촉촉한 거리가 가슴 뛰게 달려온다.


"삐~~~"

오그라든 마음을 꿰뚫는 소리가 울리고

H는 버스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어제부터 내린 폭설을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네. 다행이다.

곱게 쓸어내린 돌담길 따라

멋쩍은 걸음을 재촉해 본다.

밤새 흰 가운을 걸친

시립미술관이 나타났다.

아직은 좀 이른 시간이라

발길이 뜸했다.

아, 그래, 오히려 좋아.

진입로 옆 작은 정원에는

조각상들이 나무들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나무 한 그루가 참 컸다.

너도 작은 새싹부터 시작했겠지.

모든 무성한 나무의 시작은

포기하지 않은 하나의 씨앗이라던데

오늘 하루가 그런 날이 될 수 있겠지.

작은 기대감이 입김처럼 몽글거렸다.

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이었던가.

미술관을 은은히 감싸는 선율이

향수처럼 H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소리를 따라, H는 자신을 기다릴

그 사람을 향해 남은 발걸음을 다해 본다.


미술관에 들어서자

은백색 바닥과 청백색 천장이 반짝였다.

특별전시 안내가 곳곳에 피어있고

중앙의 대형 상설 전시품은

거목처럼 우뚝 섰다.

"아직 안 오셨나?"

주위를 둘러보니 날개를 펼친 듯

자리한 대기석 저 너머에

그 사람이 앉아있다.

"아, 오셨구나."

H는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빨간 토마토처럼 상기된 볼로,

차오르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반가운 얼굴이 웃음꽃을 피웠다.

씨앗이 움텄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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