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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n 19. 2024

2층 창문에서 내다본 풍경

2024.6.19.


S는 눈을 떴다.

물속에서 수면으로 떠오르듯

잠 속에서 헤매던 의식이 솟아났다.

날이 꽤 밝다. 늦잠을 잔 걸까.

익숙한 천장과 벽지가 보인다.

네모 반듯 하얀 티라미수 같은

천장 등이 옅은 햇살에 비껴있다.

오늘은 알람 없이 일어나도 되는 날이지.

서두를 필요 없어.

S는 기지개와 하품을 천천히 펼쳤다.

좋구나. 출퇴근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두 손은 머리 위에 깍지 끼고

누워서 좀 더 여유를 부려볼까.

졸음  한 겹이 덧씌워진 은은한 기분.

잠들 듯 깰 듯 두 경계를 넘실대며

파도 위 잎사귀처럼

숨결의 흐름에 몸을 맡겨보자. 편하다.


창문을 기어오르던 햇살은

어느새 S의 눈가를 파고들었다.

밝은 알갱이가 팝콘처럼 튀어 올랐다.

빛은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라고 하던데,

지금은 낱알 같이 느껴지네.

입자라고 생각하면 입자처럼,

파동이라고 생각하면 파동처럼 행동한다는데

완전히 이해가 되진 않아도 신기한 현상이다.

아무튼 이제는 잠의 세계를 벗어날 시간,

S는 잠시 뒤척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햇볕은 S를 자석처럼 창가로 끌어당겼다.


3층 벽돌집에서 2층에 있는 S의 방,

아담하다고 표현하면 될까.

연갈색 나무 창틀에 얹힌 미닫이창은

늦은 오전 풍경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남동향 창문 바로 밑에는

차 한 대가 지나갈 너비로

암회색 골목길이 허리띠처럼 둘러있고

골목길 양옆으로 닮은 듯 다른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이

포도송이처럼 붙어 있었다.

창문 맞은편에는 스무 걸음 남짓한

공터가 있는데 봄이 오면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었다.

동네 꼬마들이 가끔 왁자지껄

모이는 만남의 광장인데

오늘따라 더 많이 온 것 같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놀이 규칙이 있는 듯 없는 듯 자유롭다.

저기 하늘색 티셔츠에 흰 바지를 입은

남자아이는 몇 번 본 적이 있다.

개나리덩굴 옆에서 쪼그려 앉아

흙 쌓기를 주로 한다.

주먹만 한 모래 언덕 위에

나뭇가지를 세워 두거나

돌멩이로 도로를 파서

작은 장난감 자동차를

휘휘 젓기도 한다.

오르락내리락 길을 따라

내 마음도 굽이치는 것 같네.

셋방살이도 이만하면 괜찮아.

티백 녹차를 찻잔에 퐁당거리며

S는 중얼거렸다.

재작년 창문 없던 고시원보다는

훨씬 낫지. 화장실에 작은 거실도 딸린

이만한 공간이면 나름 만족해.

해를 보고 비를 마주할 수 있음이

이런 기분이었던가.

S는 틈날 때마다

2층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작은 꿈이 창가에 비쳤다.


2층 창문에서 내다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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