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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l 09. 2024

실망했던 일들

2024.7.9.


오늘도 눈을 떴다.

아직은 어두운 방,

곧 밝아질 테지.

크게 숨을 내쉬어본다.

입김이 천장에 닿을까.

눈을 감았다 다시 뜨고

옆으로 누웠다.

충만한 허전함이 길게 드리워 있다.

작은 방 한쪽을 쓸쓸히 채우는

미지근한 감정, 그리움으로 전하는

반가운 인사를 건네볼까.

아직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잠들면 잊히는 게 있고

생각나는 게 있다.

대개는 잊어버린다.

잊는다기보다 가려진다.

사라진다기 보다 덮어진다.

그러다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예고 없이 두더지처럼

튀어 오르는 기억들,

두들겨 넣어도 계속 솟아나는 추억들,

욱여넣어도 주룩 흐르는 슬픔,

그리고 후회의 방울들이

소나기처럼 쏟아 내렸다.


오랜만에 동네 카페에 왔다.

테이블 10개 남짓 아담한 공간.

자주 마시던 따뜻한 차 한 잔 시키고

창가 구석 둥근 탁자에 앉았다.

여기서 제일 작은 자리,

한 사람이 앉기는 크고

두 사람이 앉기는 작은 곳,

이곳에 종종 왔었다.

시간은 훌쩍 지났는데

모습이 그대로다.

부드러운 연갈색 우둘투둘은

여전히 촉촉하네.

딱딱한 청초록 가죽 의자는

지난 세월을 반질반질 빛내고 있었다.

고소한 빵내음 속 흩뿌린 커피 향이

버들가지처럼 흔들렸다. 변한 게 없네.

한 모금 온기를 마셨다.

아침을 생각했다.

어제와 이어진 오늘,

어제와 이어졌던 엊그제가

모락모락 김이 나며 떠올랐다.

후 불면 사라지는 흔적,

기다리면 다시 피어나는 자취.

식어가는 그림자처럼

마음도 무뎌지는 걸까.


살다 보면 바라는 게 생긴다.

이뤄지면 좋다.

기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지.

하지만 안 이루어질 때도 있다.

아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네.

실망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너무 큰걸 원했던 걸까.

분수껏 생각하고 행동했어야 했나.

그 분수라는 게 뭘까.

실망하면 안 되는 걸까.

실망해도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차를 홀짝홀짝 다 마셨다.

작은 알갱이들이 바닥에 슬쩍 남았다.

밖에는 다시 소나기가 내린다.

우산 없는 행인은 뛰기 시작하네.

바닥에 뿌연 물안개가 베이글에 바른

하얀 치즈처럼 얇게 돋아났다.

이제는 일어날 시간이다.

돌아갈 때가 되었다.


실망했던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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