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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l 11. 2024

그녀가 품고 있는 환상

2024.7.11.


산들바람이 분다.

길 양옆으로 길게 드리운

가로수 무리가 따로 또 같이 흔들린다.

새파란 잎사귀들이 반짝이며 흔들리고

바람소리는 지저귀듯 흔들린다.


그녀는 종종 이곳에 왔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공원,

산책로와 화단이 호수와 잘 어울리는 곳,

그녀는 이 모든 풍경이 잘 내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길 위 벤치에 앉아

한가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오늘처럼 날이 맑은 날도 좋고

흐린 날도 괜찮다.

하지만 그녀는

비 오는 날을 참 좋아했다.

포근한 봄날의 오후,

그녀는 작은 숲을 감싸 안은

그늘 발치에 기대어

빗방울이 들려주는 전주곡을

오랫동안 들었다.

한 움큼 나무의 머릿결과

삿갓 모양의 지붕이

그녀의 자리를 젖지 않게 보듬었다.

비가 들려주는 음정은 다양했다.

흙길과 돌길에서 튀어 오르는 음색이 달랐고

수풀도 곳곳에 따라 음률이 가지각색이었다.

촤르륵 후드득 토로록

물방울이 까불거리다 흩어지고 스며들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는 듯

스르륵 흘러가고 나풀거렸다.

호수 위로 퐁퐁거리는 모습이 재미있네.

누가 더 크고 멋진 모양,

또는 더 작고 귀여운 흔적을 만들까

내기라도 하듯 쉴 새 없이

내리쬐는 빗물의 열창,

생겼다 사라지고 다시 떠오르는 기억,

비는 마음을 닮았다.


그녀는 이 모든 경치를

그저 바라만 보기도 하고

자신만의 상상에 빠져들기도 했다.

생각 없이 눈길만 곳곳에 닿을 때는

마음이 가벼웠다. 고민이나 걱정 없이

풍경을 가슴에 담고 흘리고

다시 채워내면 됐다.

시선을 자유로이 읊조리며

순간순간을 만끽했다.

그 사이사이 그녀는 환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다음 달 시험을 잘 봤으면,

내일은 뭐 먹을까,

아 다음 주까지 공과금 내야지,

그러다 문득, 생각이 멈췄다.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날까.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내게 관심을 가질까.

나도 그 사람이 마음에 들까.

서로 호감이 생길까.


언제부턴가 언덕 위 벤치에 앉아

상상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내 삶의 사랑, 사랑 가득한 삶을

함께 할 사람, 서로의 마음속

깊은 곳에 빛을 비추는 인연,

똑같은 일상이 나날이

새로운 서정으로 쌓일 수 있을까.

비바람에 흩날리던 그녀의 마음이

점점 희미하게 물들어갔다.

비가 잦아들었다.

날이 개었다.


그녀가 품고 있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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